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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수상] 공존의 삶은 귀하다

엄대용 목사/마켓스퀘어장로교회

인류는 오랜 경험에서 대립보다는 공존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의 삶도 똑 같다. 이웃을 경쟁의 상대로 사는 것은 피곤하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살아라. 그러려면 내 고집을 버리고 남의 생각, 생활태도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옛날 그리스 아티카에 디마스테스라는 악명 높은 사람이 여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본명보다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는데, 이는 ‘잡아당겨 늘이는 자’란 뜻이다.

그는 도시 길목에서 피곤한 나그네를 꼬였다. “우리 집엔 누구 몸에나 꼭 맞는 요술 침대가 있으니 편히 쉬다 가시오”하고는 제 집에 온 손님을 침대에 눕혀 결박한 채,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당겨 늘이고, 길면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후에 그는 영웅 테세우에게 자신이 저질렀던 만행 그대로 죽임을 당한다. 오늘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관용구는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맞춰 남의 생각과 행동을 억지로 맞추려는 자세를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각각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있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가진 생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겠다.”

프랑스의 지성 볼테르가 피력한 ‘똘레랑스(Tolerance)’의 정신이다. 똘레랑스의 반대 개념인 ‘앵똘레랑스’로 말하자면, ‘네 생각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네 생각을 파괴하고 네가 쓴 책을 불태우고, 나아가 너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의 똘레랑스 정신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도 극단으로 치닫던 처절한 역사가 있었다.

16세기 초부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신구교도 사이의 처절한 싸움, 화형과 학살이 거듭되었고, 18세기 후반부터는 귀족과 시민, 혁명과 반혁명, 강경파와 온건파의 이분법적 싸움으로 수 많은 피를 단두대에 뿌렸다.

폭력과 공포로 얼룩진 비정한 앵똘레랑스 행위 후 깊은 자기 반성이 오늘날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만든 것이다.

똘레랑스는 ‘관용’이란 번역의 뜻 이상으로 ‘나와 다른 사고방식, 생활유형, 종교 등을 밀어내지 않고 용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관심도 수용도 아닌 존중이 그 중심에 있다.

이것이 공존의 삶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요.”(시편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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