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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에 핀 꽃] 덕암리 우리 집

법장 스님/필라화엄사 주지

내가 서당을 다니며 출가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이 난산리와 신원리 사이에 있는 덕암리이다. 덕암리에 살게 된 것은 전주에서 아버님이 병환으로 쓰러지면서 화원리 고모님 집으로 이사를 왔다가 그 다음 이사한 곳이 덕암리이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무슨 영문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왔는지 모른다. 덕암리 우리 집은 마을 집 중에서 산자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였고, 산자락으로 자그마한 텃밭이 있고, 그 옆엔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덕암리에는 큰 감나무가 군데군데 있어서 새벽이면 떨어진 감을 주워 와 맛있게 먹기도 하였다.

우리 집 바로 뒷산은 상수리 나무가 무성했고, 봄이면 고사리와 취나물이 많았다. 고사리는 내 눈에 잘 띄지 않았고 취나물이 쉽게 보였다.

간혹 반찬이 없을 때, 어머님께서 밥을 지으시는 순간, 나는 산에 올라 취나물을 채취해오면 어느새 밥상에 올라 풋풋한 취나물의 냄새를 풍기며 식욕을 돋운다. 나는 어릴 때 금방 채취한 취나물의 향기를 잊을 수 없어 간혹 호기심에 먹어 보지만 그때의 그 맛은 느낄 수 없어 아쉽다.

마을 앞에는 맑은 개울물이 흘러 여름이면 목욕을 했고 아침마다 세수를 할 때나 발을 씻을 때나 개울물을 이용했다. 개울 건너에는 산이 하나 있으며 깊은 골자기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이곳은 또 야생 밤이 많아 가을이면 너도나도 밤을 따다 먹었다.

그런데 내가 살던 그 방은 전 주인이 서까래에 목 매달아 죽은 집이라 누구도 사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집으로 이사를 하여 아무 이상 없이 잘 살았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에서부터 천수경을 외우셨는데 우리가 듣기에도 참으로 좋았다.

집안 어른께서 절에 들어가 조금 있다 오시면서 아버님에게 천수경을 선물로 주신 것인데, 그것을 받아 매일매일 외우신 것이다. 내가 집에 사는 동안 아버님께서 절에 가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지만 천수경 만큼은 아침저녁으로 지극 정성 외우셨다.

우리 가족이 목 매달아 죽은 흔적이 있는 튀어 나온 서까래를 소금과 헝겊으로 제비다리 동여매듯 감싸놓은 상태를 바라보며 잠을 자며 생활했다는 것은 지금도 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버님께서 담력이 그만큼 크셨을까?’ 하는 의문과, ‘염불을 아침저녁으로 하셨기에 가피력으로 무사하지 안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나의 뇌리에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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