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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내가 겪은 6.25전쟁과 천안함

6·25 60주년기념 수필 공모
▷신금석
·노스리지 거주
·주부

1950년 3월 2일 찬란한 햇빛과 맑은 공기로 꽉찬 아침 운동장 조회때 교장선생님께서 각 학년 반 담임 선생님을 발표했다.

우리 선생님의 성함은 탁인섭 선생님이셨다.

조회를 마치고 교실에 들어오니 선생님께서는 이미 들어와 계셨다.

출석을 부르시며 미소띤 얼굴로 우리를 바라 보셨다.



“여러분, 오늘 부터 함께 생활하게돼 반갑습니다. 앞으로 공부를 잘해야 겠어요.”

선생님을 간단히 소개하면 평양에서 서울로 오셔서 여기까지 오셨다고 하셨다.

평양에서 남부럽지 않데 살던 가족은 북한이 공산정권에 들어 서게 되면서 아버지가 지주래서 공산당에게 끌려가 재산을 다 빼앗기고 억울하게도 학살을 당했다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분개해 대동강변으로 뛰쳐나가 절망중에 신음하시가 결국 쓰러져 처함하게 돌아가셨다.

나는 남동생과 안식구, 딸아이와 북한에서 살수가 없어서 북한을 탈출해 남동생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됐다.

“여러분을 만나게되 참으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집에사거 부모님께 서신을 드리세요.”

“불학불식한 소생이 귀댁의 자녀들의 교육을 맡게되 양 어깨가 무겁습니다. 하오나 사도정신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란 간단한 글을 써 주셨다.

우리들은 깜짝 놀랐다. 북에서 오셨다는 말씀, 괴로느런 삶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이럴수가! 선생님께서 고생이 많으시구나” 하시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셨다.

학교 관사에 사시게 된 선생님께 간장,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 밑반찬을 보내드렸다.

선생님께선 학교에서 실시하는 가정방문을 하시면서 어린이 교육에 참고하시는 훌륭하신 선생님이셨다.

때마침 농번기 방학을 하였는데 학교에서 급히 오라는 연락이 와서 달려 갔더니 “금석아, 우리 가족 너희집에서 올 여름만 지내면 안될까? 지금 부모님 어디 계시니?”

“오늘 저희집 모심는 날이에요” 라고 대답한 후 집에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하니 정말 걱정이 되었다.

논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선생님께서 올 여름을 우리 집에서 지내고 싶으시대요. 어쩌면 좋아요?”

“선생님 사정이 그러시다니 어쩌겠니? 걱정하시지 말고 오시라고 지금 곧 달려가 말씀 여쭤라”

나는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단숨에 달려 갔었다.

그날 석양에 선생님께선 이불 봇짐을 메시고 사모님은 아기를 업고 오셨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정성껏 저년 식사를 대접하셨다. 선생님 내외분 염려마시고 내집처럼 편히 쉬시도록 안방을 내드렸다.

우리 부모님께선 밤마다 선생님 내외분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시고 대화를 하셨다.

나는 중학교에 진학 꿈을 이루려 동아전과, 모범전과 두 권을 읽고, 쓰고, 외우고 호롱불 밑에서 12시를 넘겼었다.

한번은 ‘무슨 얘기를 저렇게 밤마다 하실까?’ 하는 생각에방문 앞에 가서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에서 핍박 받으며 살아온 얘기, 언제 죽을지 절망 속에서 살아온 얘기 부모님들의 참혹한 죽음, 죽음을 각오하고

무릅쓰고 월남한 얘기 내친김에 일본까지 가려했으나 여기 전북 진안군에 머물고 보니 지하랑 소굴이어요.

사모님은 훌쩍 우시고 선생님께서도 목 메인소리로 머지 않아 북한 괴뢰군이 여기까지 쳐들어 올테니 몹씨 걱정이야유.

며칠후 동네 사람들이 모정에 모여 봉두씨땍에 와 있는 선생은 학교 관사로 가시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주일이 되어 공산당은 지서와 면사무소에 쳐들어와 각 마을 지하당원을 파악하고 연락망을 조직 했다는 것이다.

지서장과 순경들 면장과 직원들은 피신하고 목사님은 끌려가 총살당했고 지하당원 집은 제외하고 우리동네에서는 우리집에만와서 시계와 금품을 내 놓으라고 괴롭혔다.

동네 청년과 우리반 아버지들은 지하당원으로 밤이면 전기줄 끊고 다리 끓는일을 계속 해오던때 동네 친절한 분들은 걱정을 했다.

봉두씨네 댁에 아마 서울에서 경찰관인 형들 또는 검찰청 근무하는 조카들이 온건지도 몰라. 날만새면 수근거리며 우리집의 감시를 받던중 드디어 아빠께서 당원들에게 끌려가 구금되었었다.

여름방학중인데도 인민군 노래 배우라고 등교를 하라 하였다.

학교가는길에 도시락을 갔다드리며 창백하여진 아빠얼굴을 뵈오니 송구스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버지께서 지금 고통 당하시는 것은 우리선생님의 가족들이 우리집에서 지내셨기에 동네 사람들의 오해와 의심을 샀기 때문이 아닌가?

난 엄마뵈올 염치가 없었다.

며칠후 엄마께서 해질녘에 취나물 무침을 갖고 친형제 처럼 지내는 최창근씨댁 대문안에 들어서자 어쩌면 좋으니 화를 면할 방법이 없을까?

창근씨의 할머니 음성이 어렴풋이 엄마귀에 들려 왔었다.

이모님, 방금 그 말씀 무슨 뜻이에요?

잘은 내 몰라도 지서에 갇힌 사람들 오늘밤에 차에 실려 계곡으로 가면 죽엄을 면할길이 없대, 어마나 이게 무슨일이래요.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었다. 집에 돌아 오셔서 우리들을 끌어안으시고 통곡을 하셨다.

새벽녘에 “여보 나야” 들릴 동 말 동 아빠의 음성이 들려 왔다.

한숨 자지 않고 온 식구들은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쉬잇 조용히 방에 들어오시지 않고 그 길로 어디 먼 곳으로 가셨다.

천우 신조로 살아 오셨다고 어머니께선 하나님께 기도로 날을 샜다.

어머니께서 산고개를 넘고 넘어 금광에 은신해 계시는 아버지께 이틀에 한 번씩 도시락을 날랐다는 것이다.

괴로 장들은 끌려간 양민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총을 쏘았을 때 총알에 맞기 전에 맞은 사람과 같이 쓰러져 살아 돌아 오셨단 이야기를 얼마 후 들은 바 있었다.

공산당은 “신봉두 간나 새끼가 없어졌는데 내놓으라우, 어디메다 숨긴 거야?”소리소리 지르며 갑자기 총부리를 들이대어 깜짝 놀라신 어머니는 동생을 업고 내손을 잡고 성화대는 공산당을 따라 을미산 밑에 가서 금석 아버지 소리쳐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오늘은 해가 저물었으니 내일 찾아보자고 한 동네 사는 우리 반 강계순의 아빠가 당원들을 납득시켜 집에 오게 되었다.

금광에서 아빠는 굶주림과 고뇌에 시달려 사경에 이르렀다.

또 한편 옥구군 미면 미룡동에서는 양민을 붙잡아다 깊은 우물에 투신하고 돌로 눌러 인간 젓을 담던 잔인무도한 공산당 들이었다.

또 창고에 여름 내내 가두어 두었던 수십 명을 불러내어 괭이와 고갱이로 찍어 죽여 소금을 끼얹었다니 잔인무도한 괴로 도당 들이었다. 그러자 추석이 돌아 왔는데 동네 아낙네들이 여기 저기 모여 수군거렸다.

“공산당들이 쫓겨 가고 있데, 국군들이 돌아오면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어떻게 될까!” 근심 띄운 음성들이었다. 이분들은 지하당원 아내들이었다.

16개국의 유엔 참전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공산당들은 후퇴하게 되었다.

공산당들은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아 양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산에서 나무하다가 산촌 사람들은 마당에서 콩타작 하다가 날아온 총알에 맞아 죽은 사람이 많았다.

우리 가족들도 마당에서 콩타작 하다 죽을 뻔 했다.

우리집 왼편 산등성이에 총대를 메고 누리끼리한 군복차림에 힘빠진 걸음 거리로 지나가며 총성을 울릴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몇개월이 지나 추운 겨울이 왔다.

동네 청년들과 지하 당원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어 공산당 행각을 했다.

이들은 쫓기는 북괴들과 합류하여 이북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빨치산으로 지리산까지 못간 잔당들은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서(산) 지내며, 밤이면 내려와 소, 돼지, 양식등을 빼앗아 가며 어느땐 제사 지내기 위해 준비한 제물도 다 가져가기도 했다. 그들은 동상에 걸려 고생도 했다고 했다.

몇개원후 중공군의 참전에 따라 연합군이 대규모로 퇴각한 사건으로 1951.1.4 일은 서울을 공산진영에 빼았겼다.

이 때 국민들은 하루 바삐 서둘러서 쌀을 볶아 가루를 장만하고 피난 준비에 애를 썼다.

엄동 설한의 피난준비는 그때 들은 어머니 말씀으로는 오금이 절였었다고 하셨다.

그때 일을 생각하고 이글을 쓰니 손이 자꾸 떨리는구나!

그후 8개월이 지나 맥아더 장군의 진두지휘아래 유엔군의 도움으로

서울을 다시 찾게 되어 전주, 광주, 대구, 부산 등지로 피난 살이 했던 경기도민, 서울 시민들은 역경에서 벗어나 서울로 입성하게 됐을 때 집은 불타 없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교 공장, 대규모의 빌딩의 파괴 부모 잃은 전쟁 고아가 수백만에 이르고 달했고 목숨 바친 국군과 유엔군도 수 백 만 명에 이르렀다.

6.25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준 상처는 오늘까지 깨끗이 아물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일꾼들은 살기 좋은 국가 건설에 힘을 다했건만 지금껏 조국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국가로 세계인들이 주시하고 있어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어찌 한탄스럽니 않을 소냐.

그런데 이번 황당한 천안함 사건 이 어찌 된 일인가

통탄스럽기 그지없구나!

정부나 국민이 안보 불감증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천안함 사건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 공식회부되어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보리에서 다뤄줄 것을 암보리 의장국에 제출했다는 것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임이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명백히 드러났다 하여 유엔 안보리가 이번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엄중하게 대응해 줄 것을 요청하고 이번 북한의 공격행위를 규탄하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일반 결의안을 추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에서는 그렇게까지 되도록 안보에 무관심하며 살고 있었을까.

발을 굴러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을 소냐.

정부나 정부요인들, 국민 모두가 안보 불감증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러면 73세가 되도록 대한민국 여인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아오는 동안 하여온 일이 무엇인가 반성하여 보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달리는 투사와 같은 용기와 끈질긴 인내와 불같은 집념으로 숭공통일을 위해 일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우수두뇌로 성장시키기에 노력하여 왔으며 해마다 6월이 오면 반공교육 행사에 힘썼다.

실천사항으로 학년(전학년)초부터 숭공일기쓰기를 실시하여 우수학생 학급당 3~4명을 선정하여 표창하였고 멸공 웅변대회ㆍ멸공 글짓기대회ㆍ멸공 그리기대회를 실시하여 6.25를 상기시켜 안보의식 고취, 반공애국정신을 고취, 함양코저 반공학습 자료실 설치 운영, 반공관과 반공복도 환경 구성하여 반공교육에 시범학교가 되도록 노력했다. 이제 와서 내자신에 대하여 실적이 만족하지 않았다고 후회를 하지 않는다 도지정 반공시범 연구학교 연구주임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말이다.

오늘이 6월11일. 머지않아 6월 25일이 다가온다.

6.25때 참혹하게 돌악ㅏ진 선친들과 호국영령들께 참배와 묵념을 드렸다. 가신님들이여! 묘소 주변엔 산과 바람, 허공과 해와 달, 별만이 펼쳐있으리라 생각하노니 앞으론 우리 민족의 살과 피와 함께 어우러져 하루 빨리 국민 모두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진리와 자유의 나라가 되어 땅따로 물따로 관리하지 말고 한 덩어리가 된 무궁화 활짝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평화 꿈틀거리는 대한민국을 행복지수가 5위안에 드는 국가로 건설토록 약속 드리오리다.

대한민국의 천안함 파괴로 돌아가신 46인의 고귀하신 수병들에게 앞날의 조국의 비전을 바치오리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님들은 국민의 멍든 가슴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가신 임들이여! 우리 국민 모두에게 억장이 무너지게 하고 슬픔을 안겨주심으로 철통 같은 안보의식을 고취시켜주셨습니다.

우리는 울먹이며 애국애죽하신 수병님들을 위한 행진곡을 편히 잠드시도록 조용한 행진곡을 불러드리오리다.

아아 잊을 수가 있으랴. 우리 천안함 부서진 이날을 땅을 치며 격분에 찼던날을 잊으리오!

앞으로 그날의 원수를 갚겠나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부의 요인이나 국민모두의 안보불감증을 원망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안보에 관심을 단단히 가질 각오가 되어있지 않고거야 북괴의 남친야욕을 물리치기 쉽지 않을 것이며 수상하면 간첩이 아닌가 예리한 통찰로 지혜를 모아 철통같은 안보태세로 북괴들의 남침야욕을 벽리 뽑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북한은 경계선을 넘나들고 2002년 서해 교전도 잊을 수가 없다. 북한과 교전 2분 뉴스속보는 국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정부는 북한에 엄정한 통보를 하고 침착하고 의연히 대처했으나 북한은 아랑곳 없이 우리를 얕보고 천안함 사건을 또 이르킴이 아닌가?

국민들이여! 청통같은 안보태세로 악독한 북한의 남침야욕을 잠재웁시다.

하늘이여! 땽이여! 국민들의 애국심과 강력한 안보태세에 강인한 힘을 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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