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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여행 속으로] 수준 높은 관객…수준 높은 예술

눈높이 올려야 할 오스트리아 비엔나

하루라도 더 있다 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했다. 값도 싸고 무거운 가방을 기차역에서 오르락내리락 할 필요도 없는 버스를 택했다.

시니어 디스카운트를 하니 18달러였다. 음료수도 주고 영화는 말을 몰라 포기했으나 싸고 편했다. 빈부차일까. 체코보다 오스트리아 도로가 더 잘 관리된 듯 했고 국경을 넘는 데도 같은 유럽연합인데도 좀 까다로운 듯 했다. 비엔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대기 택시가 없어 무거운 가방을 끌고 이곳저곳 다니느라고 고생을 했다.

호텔에 여장을 푼 후 곧바로 도심 번화가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성 스테판 성당 앞이었다. 지하철에서 나오니 옛날 궁정음악인 옷차림에 각 음악회 표 장사가 여러 명 눈에 띄었다. 흥정을 해 보았다.

60유로짜리 티켓을 20유로면 사겠다고 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왔다는 표 파는 사람이 하도 재미있어 그냥 장난삼아 한 말이었다. 그런데 웬걸 재수있게 30유로로 샀다. 표 장사가 극장에 한참 전화한 후였는데 내가 막 취소된 것을 잡은 행운이란다.

표를 샀으니 느긋하게 성 스테판 성당에 들어갔다가 그만 압도당하면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2세기에 지었다는 성당 규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각, 벽유리 그림, 역사 유물이 대단했다. 거기다 출생?사망신고를 통괄하는 사회적 중심이었고 모차르트의 출생신고도 여기서 했다 한다.

한국 분들이 떼 지어 오고 있었다. 누가 와서 인사를 한다. 북버지니아 우리 동네분이다. 신부님의 인솔로 대부분 뉴욕에서 왔는데 자기가 끼어 왔단다. 아직도 음악회 시작까지 시간이 있다.

우리 부부는 이곳의 전통음식점 최고식당으로 1905년에 문을 연 휘글뮬러(Figlmueller)라는 식당으로 갔다. 그 유명한 메뉴 슈니젤(schnitzel)-돼지고기를 아주 엷게, 빈대떡보다도 더 크게 썬 것을 돈가스처럼 튀긴 음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몰랐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문 앞에 줄 서있던 사람들이 식당으로 몰려 들어와 앉아있는 우리보다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이 원숭이 땅콩 까먹는 것 구경하듯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식사 후 가격 흥정으로 횡재한 로열 비엔나 오케스트라의 요한 스트라우스와 모차르트음악회에 갔었다. 격조 높은 분위기에 아주 좋았다.

다음날 하루는 전기차, 버스, 지하철을 타며 비엔나를 돌아 다녔다. 그 웅장한 건물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끝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역사가들이 세계의 외교는 이곳 비엔나에서 춤춘다고 했던가

어찌 되었던 비엔나 여인들은 게르만족으로는 독일 사람보다 키가 작고 아담하다. 그래서 그들의 발레나 왈츠 춤이 더 아름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음악과 춤의 유혹 때문이었을까. 1920년대부터 옆 나라 독일에서는 애국이다, 정치가 어떻다, 그리고 나치가 시작되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정신적인 피난처를 섹스(sex)에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드 교수가 이곳 비엔나대학에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고 벨베르데르(Belvedere) 궁전 미술박물관에 있는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의 그 유명한 키스(Der Kiss)를 비롯한 그와 그 유파의 에로틱한 그림들을 꽤나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기야 그 알뜰한 살림꾼 이승만 박사의 부인 프란체스코여사도 테니스 선수와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다 하니 그 당시의 풍토를 짐작할 만하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그 유명하다는 비엔나 숲을 가보았다. 그저 그랬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길에 레나(Renner)라는 음식점에서 전통 비엔나 스프(soup)라는 갈비탕 비슷한 스프와 소의 간-돈가스처럼 프라이한 것 같은 것-을 즐겼다. 값도 각각 약 10달러로 저렴했고 꽤나 맛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의 비엔나 하이라이트….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발레 메이어링(Mayerling)이라는 것을 감상했다. 매년 연초에 TV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꿈의 왈츠가 공연되는 바로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보았다.

그 공연 내용이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그러나 입장료는 워싱턴의 케네디센터보다 비쌌다. 특별석, 로열석이 아닌 일반석 중 괜찮은 자리였는데 약 180달러였다.

그런데 휴식시간에 케네디센터에서는 여인들이 등이 다 터진 희한한 드레스에 와인이나 칵테일 잔을 들고 떠들어대는 것과는 달리 아주 수수한 옷차림에 조용히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듯 했다. 그러나 공연 중 나는 그들이 진정 공연에 몰두하는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수준 높은 관객이 있기에 수준 높은 예술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공연장에서 나와서 돈도 많이 썼고 시간도 늦어서 저녁은 슈퍼마켓에서 (비엔나는 레드와인이 아니라 백포도주라 해서) 백포도주와 치즈, 빵, 베이컨을 사서 호텔방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다음날은 나의 집사람을 위한 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골치 아픈 역사다, 무엇이다 하기 전에 아름다움, 특히 자연과, 꽃을 좋아하는 집사람의 마음에 드는 하루였기에 말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각 나라 소수민족 춤에서 그만 그 춤에 황홀해서 몇 백 장의 사진을 찍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날도 몇 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첫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인 센부룬(schonbrunn)의 정원이었다. 마차를 타고 약 30분 좀 넘게 돌았는데 진정 아름다웠다.

두 번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운의 공주 씨씨(Sisi)의 기념박물관에서였다. 동서양의 모든 식기 도자기 그릇이었는데 너무 예쁘다고 계속 셔터를 눌러 댔다. 나로서는 동양의 도자기전시장에 중국 것과 일본 것밖에 없는 것이 꽤나 섭섭했다.

유럽 연합이라고 하나 발트해 3국, 그리고 체코도 아직 유로화를 안 쓴다. 또 물가도 아직은 그리 비싸지 않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유로를 쓴다. 택시, 음식값 등 다른 곳에 비하면 비싸다. 그러나 검소함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그러나 정을 느끼지 못할 만큼 어딘가 마음이 안 열린다. 아마도 그들의 잘 잡혀진 질서 속에서 내가 여유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면 관광지가 체코처럼 옹기종기 모여져 있지 않고 흩어져 있어 마음 들뜬 사람끼리 만나지 못해서일까? ‘차분한 기분에 나의 품격과 교양이 좀 높아진 것일까.’ 갸우뚱하며 그날 저녁도 백포도주 한 병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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