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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이제야 눈이 감겨요

김외출

문우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중 후식으로 나온 찬 식혜를 마시는데 갑자기 왼쪽 입술이 감각을 잃었다. 함께 있던 한 문우의 도움으로 바로 한방병원 응급실로 갔다. 진찰을 한 의사가 안면마비라며 "당장 내일 입원하라"고 했다. 의사의 처치에 따라 침 몇 대 맞고 귀가했다. 그 문우가 서둘지 않았으면 더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약속대로 입원을 했다. 내가 예약 한 병실에 먼저 와 있는 환자는 쉰살의 중풍환자로 거기서 한 달 넘게 재활치료 중이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중풍이라니 측은해 보였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진초록이던 은행잎이 낙엽이 되어 포도는 노란 양탄자를 펼쳐 놓은 듯하다. 마음을 더욱 울적하게 한다.

밤이면 옆에 있는 환자가 코를 심하게 골아 신경이 예민한 나는 숙면을 할 수가 없었다. 담당의사는 안정을 취하라고 당부했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여 두 주일 만에 퇴원해 통원치료를 했다.

지난해 겨울은 여느 해와 달리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매스컴에서 100년 만에 처음 맞는 폭설이라고 하였다. 게다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넘고 길은 얼어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 날씨에도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3개월이 넘도록 통원치료를 했다.

그러나 날씨 탓인지 나이 탓인지 쉽게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물리치료실에 가면 중풍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말을 잘 못하는 사람 안면마비로 얼굴이 괴물 같이 무섭게 변한 분도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자신을 다독이기도 했다.

이웃에 사시는 분이 내 꼴이 딱하게 보였던지 안면마비로 유명한 의사를 소개 하려고 했지만 주위에서 많이 들은 권고라 뜨악해서 한 귀로 흘렸다.

그러나 치료한지 4개월 이상 지났으나 속눈썹이 감기지 않아 안구건조증이 심해져 각막에 염증이 생겼다.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아리고 시리며 꼭 불에 덴 것 같았다. 주방에서 요리 할 때 마늘을 다지면 바늘 끝으로 눈을 찌르는 듯 했다. 추운 날 밖에 나가면 안경이 하얗게 얼어 앞을 볼 수가 없어 병원에 갈 때는 늘 불안했다.

인생이 홀로 가는 길이라지만 절간같이 고요한 집에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겨 있자니 외로움이 가슴을 저며 왔다. 고독을 이겨내는 것은 투병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불현듯 맹인의 고통을 실감하며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됐다.

몸이 천량이면 눈이 900량이라 하지 않던가. 책을 읽지 못하고 글도 쓰지 못한다면 삶의 의미가 없다. 이러는 사이에 약간의 우울 증세까지 나타나 때로는 죽고만 싶었다.

또 마음 아픈 것은 문화 언어 정서가 다른 이국하늘 아래서 부모 형제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아들아이가 그래도 LA중앙일보 문예 마당에 내 글이 실리면 어미를 만난 듯이 기뻐했는데…. 앞으론 나와 정신적 교감의 기회마저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가슴이 아려왔다.

고민을 하다 새로운 한의사를 추천해 준 이웃 분을 찾아가서 그 의사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다. 알아본 결과 현재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서 10년을 근무하다 내가 입원하기 두 달 전에 그만두었다 한다. 그분의 행방을 병원에 물어봤으나 모른다고 했다. 성함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안양농수산물 시장 관리 동에 한의원을 개업한 것이 아닌가. 다행히 중풍과 안면마비를 전공한 중국인 2세의 한의사였다. 나는 어쩐지 예감이 좋았다.

첫 날 눈과 코 사의에 침을 놓아 두려움에 떨려 전신이 땀으로 멱을 감았다. 집에 돌아오니 눈이 빠질 듯이 아파서 기대보다 실망이 컸다. 다음 날 포기할까 생각하다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더 갔다. 두 번째 침을 맞고 나니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렇게 심하던 통증이 줄어들고 눈이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일침 이약이라더니….

당장 과천의 N안과로 달려갔다. 눈을 체크한 남 원장님이 오랜만에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이제 눈이 감겨요." 3일전까지만 해도 눈이 감기지 않았는데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모니터를 보니 속눈썹이 꼭 감기는 것이 아닌가. 이런 명의를 진작 만났더라면….

다음날 그 한의원으로 갔다. 그동안의 고통이 환등처럼 스치며 감격해서 나도 모르게 원장님의 손을 꼭 잡고 통곡을 했다! "원장님! 이제 제 눈이 감겨요. 고맙습니다." 내 울음에 간호사들이 놀라서 모여들었다. 그 기쁨과 환희는 무엇으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눈의 기능이 완전히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난 요즘 매일 넣던 안약을 전부 끊고 인공눈물만 넣는다. 이제 책도 조금씩 볼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은 뜨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인 눈을 나는 감지 못해 죽을 고생을 한 셈이니 형편 따라 울고 웃게 하는 세상이치가 숙연 할 따름이다. 이제 눈이 감겨요.

▷‘수필과 비평’ 등단
▷수필집 ‘숲으로 가는 계단’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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