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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속도훈련

오영방

우리 앞집의 소나무는 백년이 넘은 노송인데 이년 또는 삼년마다 가지를 치고 잘라 주어서 몸집은 크나 20미터 정도의 높이에 반달 모양으로 보기에 아름답다. 옆집 뒤뜰에 서있는 팜추리는 50미터 정도 높이에 콩나물 같이 항상 보아도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로 꼭대기만 파란 잎들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흔들리고 있다. 바로 그 밑에는 꺾여진 잎이 갈색으로 변해 몸통을 감사며 그대로 매달려 있다.

오른쪽 집 앞뜰의 올리브 나무는 작은 잎사귀들이 실바람에도 항상 흔들리며 부드러운 잎들이 새들의 보금자리에 적합해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날아든다.

이런 것들이 보통 나의 시야에 잡히는 우리 집 주변의 큰 나무들이다. 이 지역은 오래된 역사 보존지역이라 나무들도 한 세기가 지났다. 올리브 나무는 두 사람이 잡아도 남을 것 같은 둥치다.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는 속도훈련이라는 항목이 있다. 아주 느린 속도에서 관찰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소나무는 가지들 마다 맨 끝에는 새순이 나와서 하늘을 향한다. 아주 연약하고 부드러우나 세월이 지나면서 짙은 색으로 변하고 단단해진다.

이렇게 겉모양은 보이지만 속 마음은 무엇일까? 백여년을 한곳에서 한결같이 어떤 마음으로 견디는 존재일까? 비바람이며 눈보라며 강풍이며 뜨거운 태양 열이며 자연의 재해에 대한 불평은 없는가. 친구는 있나 말 벗은 누구와 하나 아프면 누가 어루만져 주나.

올리브 나무는 밑에서부터 1미터 높이에서 다섯 가지로 나뉘어지고 각 가지가 성인 한아름의 크기다. 다시 5미터부터 여러 가지로 나뉘어진다. 특이한 것은 다섯 가지의 크기가 비슷하다. 이 나무는 원래부터 사이가 좋아서 형제 가지들이 서로 양보하고 협조하며 살았는지 동일한 몸집이다. 몸과 비교해 잎사귀의 크기가 작다. 아무리 무풍이라도 항상 흔들리고 있다.

색도 초록색과 백색이 혼합된 것 같은 하얀색에 가까운 초록색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서 새들이 많이 와서 논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놀기에도 편리하고 그들에게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는지 먹을 것이 많아 나누어 먹는지 혹은 친구들과 대화하며 조잘조잘하는지 외로움을 호소하고 서로 격려하는지 그들의 세계를 상상만 해본다.

밑 부분은 오래된 뿌리가 자라나고 무덤처럼 올라와 있다. 여러 마리의 비둘기나 이름 모른 새들도 같이 논다. 새들의 색과 나무 껍질의 색은 동일하다. 이른바 보호색이다.

나무가 새의 색을 따랐는지 혹은 새가 나무의 색을 따랐는지 알 수 없다. 아침이면 더욱 요란히 지저귄다. 그것이 공존의 관계인 모양이다.

팜추리 나무는 고집스럽게 유아독존이다. 자식도 없고 자손도 없어 몸통 하나만 하늘로 쭉 뻗어 있다. 몸통 중간에는 껍질마저 벗어져 민둥민둥하다. 뿌리의 깊이는 알 수 없으나 키로 짐작하면 깊을 것이다. 전봇대의 몇 배 높이로 서 있으며 바벨탑을 닮아서 하늘만 향하여 달린다. 저 혼자의 힘으로 하늘을 겨루어 담판을 내려나?

잎 끝은 바람에 시달려 흔들리며 하얀색으로 변해 있다. 세찬 바람에 활처럼 굽어지면서도 몸통은 하늘만 향해 곧기만 하다. 곁가지도 없고 몸에는 잎사귀도 없다. 꼭대기에서 잎사귀가 많아지면 유지가 어려운지 꺾이어 스스로 갈색으로 변하고 강한 바람이 불면 떨어진다.

꼭대기 머리만 흔들어 대며 춤을 추고 몸통인지 목인지 다리인지 알 수 없어도 홀로 생존한다. 높다고 자만심은 없는지 내려다 보면서 우월감을 갖고 있는지 목재로서 효용가치도 없는데 희귀성이라 우쭐대는지 알 수 없다. 올리브 나무와 소나무의 간격은 20 미터 정도다. 위의 가지들은 거의 1미터 거리에서 속삭이듯 100여년을 한결 같이 살아 왔다.

그들이 친구인지 원수인지 알 수 없다. 역사적 통계로 보면 이웃 간에 국가들은 백 년 동안이면 적이 되었다 우방이 되었다 한다는데 소나무와 올리브 나무는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처음부터 숙명으로 받아들였는지 땅속 깊은 곳에서 뿌리는 서로 포옹하는지 배척하는지 모른다.

감정의 표출을 우리는 알 수 없다. 하나는 한대성 고산식물이고 올리브 나무는 열대성 평지 식물인데 한 장소에서 서로가 양보를 했나 혹은 불만을 말했나 또는 인내의 한계였나 여러 생각이 든다.

팜추리는 이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 높게 올라 갔는지 밑에서 어떤 상황에도 무관심이 제일이라고 생각 할 것일까? 시끄러워 귀를 막고 키만 자라서 요지경 속의 밑을 내려보는지 알 수 없다. 시각을 달리하여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100년을 살았는데 그들의 삶의 여정은 어느 지점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의 삶에도 가난이 있고 전쟁도 싸움도 좌절도 배반도 이혼도 죽음도 있으리라 어찌 탄탄한 대로만이 놓여 있었을까? 오늘도 초록의 신선함을 쳐다본다. 지구를 주관하는 우리 인간이 너의 나이를 세다가 그만 늙어 죽어간다.

▷‘창조문학’ 수필 등단
▷미주 시학 회원
▷미주한국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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