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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참 생명은 죽음 통해 태어나”

김희건 목사/빛 교회

간혹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잘 알려진 탤런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곤혹스러움을 가져온다.

오래 전 드라마 겨울 연가를 재미있게 보았던 사람으로 쓸쓸한 자살의 소식에 혀를 차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왜 이리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일까?

죽음의 문제는 사람이 가진 퍼즐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난 생명체는 성장과 노쇠와 죽음의 길을 가고 있다. 동물들에게서는 죽음이 혹 자연스럽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사람의 경우, 죽음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서 해야 될 일이 있고, 가정과 사회 속에 차지하는 역할이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돌연 세상을 떠나는 일은 아쉽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까운 생명을 스스로 끊어 버리는 일들이 자주 있어서 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고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성경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성경의 대안을 찾아 보고자 한다.

성경에 의하면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인간에게 부과된 형벌이다. 형벌이면서 또한 교육적인 의미를 갖는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지음 받았다.

인간의 조상이 이 삶의 의미를 거부했을 때 부과된 것이 죽음이었다. 그 후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사람의 본질이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죽음을 부과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죽음의 여정에 동행자가 되었고 구원자가 되셨다. 사람은 미래를 앞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멀리서 가까이서 기다리는 죽음을 미리 보면서, 그 죽음을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살고 있다.

신앙 생활은 간단해 말하자면 죽음을 준비하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은 생명의 끝을 가리키지만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아 가고 있다. 거친 환경, 사람 자신의 허약함, 사람과 사람의 힘든 관계는 종종 사람으로 죽음을 의식하게 만든다.

절망은 죽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 절망과 죽음의 세력을 벗어나고 이겨낼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리 앞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과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몰트만은 그의 죽음을 가리켜 “죽음을 죽이는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죽음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힘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첫째는 예수의 죽음은 최초 죽음을 가져온 인간의 범죄에 대한 대속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죽음은 죄의 열매였다. 죄가 청산되는 곳에 죽음은 위력을 잃어 버린다. 누구든지 십자가 예수를 바라 볼 줄 아는 사람은 죄로 말미암은 죽음의 위협에서 자유 하는 힘을 얻게 된다.

둘째,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참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가진 가치란 그렇게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는 헐벗은 모습이라는 것을 드러내 준다. 그의 죽음 안에서 마땅한 내 죽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어떤 점에서 일까?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와 함께 죽으심을 보기 때문이다. 그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그의 죽음과 자신을 동일시 하게 된다.

참 생명은 죽음을 통해 태어난다. 신앙 생활은 예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고백하면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신앙인은 그 부활의 생명 안에서 세상을 살도록 부름을 받는다.

기독교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분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죽음의 위협에서 자유 할 뿐 아니라, 새 생명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그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게 된다.

신앙생활은 한번 죽는 죽음을 하나님을 위한 죽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끊이지 않게 죽음과 자살의 소식을 듣는 이때, 이미 나의 죽음을 죽은 분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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