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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한인 알리기 위해 뛰었다"

대륙횡단 마라톤 위업 달성한 권이주씨

한인 최초로 미 대륙횡단 울트라 마라톤에 성공한 권이주(64)씨. 어느 누구도 떠올리지 못했던 일을 해낸 그는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대륙횡단 성공의 흥분을 뒤로 한 채 체력 회복에 힘쓰고 있는 그를 만났다.

'한인 포리스트 검프’ 권이주씨는 또 뛰고 있었다. 95일 동안 대망의 대륙횡단을 끝낸 그가 이틀 뒤부터 또 다시 5~10마일씩 달리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1일 아침에도 그는 5마일을 달렸다. 곧 마라톤 풀코스(26.2마일)에 다시 도전한단다. 3106마일을 매일 쉬지 않고 달렸는데 혹 지겹지는 않을까.

“달리는 건 내 삶의 일부예요. 이번에 매일 30~40마일씩 달린 것도 어찌보면 이전 내 일상 생활의 연장이었을 겁니다.”

우려했던 건강에도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저지 홀리네임메디컬센터 코리안메디컬프로그램(KMP)에서 권씨의 회복 지원 팀을 이끌고 있는 현철수 내과 전문의 등에게 검진을 받은 권씨는 혈압이나 폐기능 등이 모두 정상이었다. 대륙횡단 기간동안 체력 보강을 위해 매일 다량의 고기를 섭취한 탓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 높을 뿐.



이번 도전에 성공한 뒤 아내 권복영씨 등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건넨 첫마디는 “더 이상은 안 된다”였다. 아무리 마라톤으로 다져진 몸이지만 중증 당뇨병 전력이 있고 64세의 나이는 누가 봐도 걱정이 됐을 것이다.

사실 권씨는 건강 달리기를 넘어 101번의 풀코스, 100마일 울트라 마라톤, 150마일 마라톤(서재필 기념 달리기) 등을 거친 뒤 대륙횡단까지 극단적인 이벤트에 계속 도전해 왔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는데 왜 극단적인 도전을 하는가.

“미국에 한인을 알리기 위해서다.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통해 한인들의 은근과 끈기 등을 전하고 싶은데 평범한 짓을 하면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나. 이번 대륙횡단 도전도 애초에는 찬성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홍종학 운영위원장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사실 권씨조차 이번 대륙횡단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누구라도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기대와 의심, 더 나아가 일부의 비아냥까지 등에 업은 채 뛰어야 했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아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할 텐데.

“사실 대륙횡단이 끝났지만 아직도 새벽에 벌떡 일어난다. ‘빨리 나가서 뛰어야 하는데’라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래서 꿈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했는지, 안 했는지….”

-뛰는 동안 전해오는 소식을 들으면서 ‘도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달려도 지평선 끝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달려도 오르막길이 나온다. 자연이 주는 외경에 도인이 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어떻게 견뎠나.

“달리기 할 때 한 발자국은 60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없이 되풀이하다 보니 대륙을 건너게 됐다. 나는 내 한 발만 보고 왔다. 그리고 날 도와준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렸다. 매번 얘기하지만 그분들의 힘으로 이번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동안 도산 안창호 동상, 서재필 기념관, 한인사회의 모교회인 뉴욕한인교회 등을 지났는데 자랑스러운 우리 선배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횡단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LA시청 출발 지점이었다. 또 마지막 구간이었던 애팔래치안 산맥을 넘을 때. 너무나도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그땐 정말 힘들어 ‘쉬어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어딘가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유엔본부에 도착할 때는 거의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 여러 번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내는 뛰고 있는 남편을 보며 ‘환장’하는 거다. 포기하자는 아내를 설득하며 달렸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썼다. 특히 뉴욕 도착 하루 전날 아내가 배탈이 나 입원했을 때는 더없이 괴로웠다.”

이날 권씨는 꼭 100일만에 덥수룩한 머리칼을 자르고 수염도 깎았다. 시원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는 “중이 된 느낌”이라며 “앞으로 무료 건강 달리기 교실, 건강센터 등 할 일이 태산인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달리겠다”고 활짝 웃었다.

한인 중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대륙횡단 대장정을 해낸 권이주씨. 이 위대한 성취를 그는 ‘건강한 세상 만들기’ ‘자랑스러운 한인 알리기’라는 꿈을 향해 가는 여정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새 마음으로 새 출발선에 선 그의 다음 발자국이 기다려진다.

강이종행 기자 kyjh69@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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