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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여행 속으로] 혁명 향한 고뇌는 '불후의 명작'으로

I부 북유럽 여행/역사 속으로
3-1 세인트 피터스버그는 러시아 -고뇌, 문학 그리고 혁명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 등 모순된 사회 보며 작품들 남겨
일광욕 즐그는 금발의 미녀들, '피의 항쟁' 과거는 아는지…


H 여행사 MRS.한이 쪽지를 내민다.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란 시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나니

― 중략 -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리라.

사실 세계는 17세기말 영국의 소위 권리장전이란 명예혁명을 시작으로 18세기는 민주적 공화제를 설립한 미국의 독립혁명, 그리고 프랑스의 낡은 신문제도, 낡은 권력을 바꾸려는 시민들의 경제적, 정치적 요구를 외치는 대혁명으로 뜨거운 시기였다. 그 와중에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이 19세기 초 러시아 침공과 패전으로 러시아의 젊은 장교를 포함한 많은 지식들이 프랑스 파리에 들락거리며 이 모든 혁명의 현장을 보았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의 소위 ‘농노제도’ 제도 하에서 신음하고 살고 있는 그들의 조국 모습을 보면서 고민을 시작했을 것이다.

19세기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라는 소설을 시작으로, 부유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난 인도주의 실천가 톨스토이가 ‘부활’ 같은 작품을 낳았고, 한 시골 작은 마을 혹독한 소위 악질 지주로서 급기야 농노들의 반항, 폭풍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을 아버지로 둔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존재 구원을 탐구하던 중 펴낸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 같은 소설을 남겼으며, 19세기 중엽을 지나 정치적, 사회적 조건의 전환 과정에서 이반 투르게네프는 세대간, 사상적 시각을 프리즘으로 비추어 보는 불후의 명작 ‘부자들(fathers & sons)’이란 작품을 남긴 것 같다.

러시아인들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제’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오늘에 신음하는 농노제도하에서 ‘모순된’ 세상을 보며 내일의 ‘혁명’을 향한 몸부림을 아마도 백년 넘게 겪어 온 것 같다. 그리고 혹독하고, 깊은 신음의 굴곡이 길어질수록 좀 더 큰 반향이 필요하고 준비되었을 것이다.

나는 칼 막스의 공산주의가 20세기에 들어서 러시아에서 시작된 것이 어쩌면 운명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1861년 농노해방, 1905년 피의 항쟁, 1917년 혁명의 시작으로 백군, 적군의 소용돌이를 지나 공산정권이 들어섰을 때, 열병처럼 세계는 ‘공산주의’란 신기루에 열광했다. 프랑스의 앙드레지드 같은 작가는 이상향을 러시아에서 찾으려 했고, 미국까지도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자본주의 문제를 표출, 소련의 학교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였고 할리우드의 많은 연예인까지도 러시아에서 그들의 낙원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제하에서 신음하던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의 경쟁, 이기심, 욕심, 배신, 소유욕 등 기본적인 성격이 무시된 이러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적인 ‘공산주의’란 단지 하나의 신기루이었음이 증명된 오늘이지만 18, 19, 20세기의 인간 본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던 그러한 러시아 역사의 현장인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내가 지금 버스창 너머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엘바강에 기념비적으로 서있는 군함을 가이드가 가리키면서 1905년 러일 전정에 참전했던 오로라호란 군함이라며, 저 배의 함포가 1917년 쏘아댄 한 방의 대포가 볼세비키 혁명의 시작이 되고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는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가장 번화하다는 네프스키 대로로 들어섰다. 작가 고골이 ‘그 길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움에 그 길에 사람들이 들어서면, 내가 그 길에 왜 왔는지를 잊어버리고 만다’고 했다는데 그 대로변에 건물, 상가들을 보니 그 사치스러움을 알 것 같다.

한 노변 카페를 가리킨다. 러시아 혁명의 태초가 된 시인 푸쉬킨이 그 카페에서 자기 부인과 염문을 일으킨 한 프랑스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 결투를 했으나 과다 출혈로 죽었다면서 그러나 그 부인은 푸쉬킨이 죽은 후 2번이나 더 결혼을 했다 한다.

‘혁명, 이념 투쟁 속에서도 역시 인간의 사랑이야기는 떼어 놓을 수 없었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구의 기후가 어찌 되었는지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5월 날씨가 꽤나 더웠다. 그리고 햇빛이 내려쬐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공원이라고 불리는 노천에 금발의 미녀들이 백옥같이 흰 피부에 일광욕을 즐긴다며 풀밭에 쭈욱 누워있다.

참으로 평화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20세기에 있었던 러시아가 아닌 소련이란 이름의 공산주의라는 꿈을 향한 몸부림에서 벌어진 엄청난 비극의 과거들을 알고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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