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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명교수 레슨 공개-2] 신수정 (피아니스트)

이야기 나누며 '믿음 쌓는다'…함께 연주하며 '화두 던진다'
"음악도 사람따라 수만 가지" 일방적인 교육 안되게 노력

집 전체의 고요함을 깨듯, 쇼팽의 발라드 1번이 울리기 시작했다.

다음 달 일본에서의 독주와 협연 무대를 앞둔 조성진(16)군의 레슨 현장이다. 조군은 지난해 11월 하마마쓰 국제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로 우승하며 국내외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던 샛별이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실력은 거침없이 쇼팽을 소화했다. 10여분의 연주 동안 스승은 바로 옆 피아노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 마지막 마디의 어두운 화음이 끝나고 신교수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지금 친 거 스스로 한번 평가해 볼래?" "화음을 진행시키는 게 좀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 근육이야. 손가락만으로 치는 게 아니라 어깨 밑 근육을 느껴야 돼."

신 교수가 같은 곡의 첫 음을 짚었다. 한 페이지 넘게 연주를 이어갔다. 조군의 싱싱한 테크닉과는 또 다른 느낌의 무게가 배어났다. "여기서는 팔꿈치를 바깥쪽으로 열어주는 게 좋아. 넌 아까 어떻게 했지? 한번 같이 해보자."



어느새 연주는 이중창이 됐다. 스승과 제자는 함께 노래하며 곡 전체를 연주해나갔다. "넌 나보다 테크닉이 훨씬 좋아서 그런지 템포 변화가 너무 많았어. 커다란 줄거리를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신 교수는 자신의 해석을 직접 들려주며 조군의 넘치는 열정을 다스려나갔다.

◆무대 위의 스승= "어휴 지난 몇 달 도대체 안 낀 무대가 없어요." 신 교수는 기자에게 '도무지 레슨실에 올 시간이 없었다'는 뜻의 농담을 던졌다.

그는 3년 전 서울대 음대에서 정년 퇴임한 후 무대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달 3일 자신이 54년 전 데뷔했던 명동예술극장(옛 시공관) 재개관 1주년 공연을 했다. 그 일주일 전에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 전곡을 서초동 모차르트홀에서 연주했다. 또 그 이틀 전에는 호암아트홀 25주년 기념 무대에 섰다. 4~5월엔 교향악축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등에도 빠지지 않았다.

때문에 제자들은 객석에 앉아 더 많이 배운다. 조군은 "지방만 아니면 선생님의 모든 연주를 보고 그때마다 닮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가 레슨실에서 직접 연주를 하면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현재진행형 무대 출연 덕이다.

신 교수는 제자의 음악에 일일이 손을 대며 고치지 않는다. 일방적 개입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다. "스물한 살에 빈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처음에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받아 적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에 따라 수만 가지의 음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됐죠." 때문에 그는 학생이 한 곡을 당장 완성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불현듯 떠오를 수도 있는 화두를 던지려 하죠."

◆소수정예= 가르치는 학생도 적다. "정년 퇴임 이후에는 규칙적으로 레슨 하는 학생이 거의 없어요." 대신 한번 레슨에 오랜 공을 들인다. 이날 오전에 시작된 조군의 레슨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함께 점심을 먹고 나서 후반전이 시작됐다.

그 중 실제로 피아노를 치고 일일이 가르치는 시간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최근 열린 국제 콩쿠르의 이야기 연습하면서 느낀 점에 대한 대화 등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했다. 연주하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방법 등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 피아니스트끼리의 대화로 보였다. 최근에 본 책과 그림.영화 이야기도 중요한 화제다. 음악은 역시 감정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레슨보다는 코칭에 가깝죠. 학생으로 대하기보다 연주자끼리 대화하는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요." 지난해 열다섯 살의 조군이 음악계를 놀라게 했던 사건은 이처럼 수많은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신수정의 원포인트 레슨

① 작곡가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책·그림 등을 많이 보라.
② 같은 음이라도 여러 가지의 색깔로 낼 수 있음을 기억하라.
③ 음악의 전체 줄거리를 생각하라.
④ 테크닉이 좋은 학생일수록 기본에 집중해야 한다.
⑤ 많이 생각하고 잘 들어야 피아노라는 큰 악기를 주무를 수 있다.

■신수정의 제자들

신수정 교수는 미국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82)의 제자다. 미국 피바디 음대에서 배웠다. 플라이셔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제자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슈나벨은 테오도르 레체티츠키에게 배웠다. 그 위로는 프란츠 리스트와 카를 체르니로 사사가 연결된다.

그리고 체르니는 베토벤의 제자다. 그래서 신 교수 제자들은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베토벤의 학생”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피아노의 전통을 배운 신 교수는 1969년 이후 서울대·경원대에서 제자를 기르기 시작해 서울대 음대 학장을 지내고 2007년 퇴임했다.

경원대 교수 조숙현(51)씨 등 학교에서 길러낸 후학들이 음악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한기정(38)씨는 “베토벤을 배울 땐 당시 역사, 슈만을 칠 때는 유럽의 시(詩)에 대해 질문을 던져 긴장하곤 했다”고 기억했다.

최근에는 신예들이 주목 받고 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입상한 임효선(29), 하마마쓰 우승자인 조성진(16) 등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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