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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여행 속으로] 어린 시절 향수 '추억의 고향'으로

소련 스탈린·무자비한 탱크…마귀 생각에 오싹거리지만
러시아 차이콥스키·볼쇼이 발레…고향 같은 그리움 깃든 곳

나는 지금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아있다. 그러면서 60년 전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나는 6.25 동란때 서울에서 90일간 공산 치하에서 살았었다. 조부와 백부가 납치되어 가시고 집안이 풍비박산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의 뇌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두 개의 사진이 있었다. 곳곳에 걸려있는 그 사진들은 나를 노려보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김일성과 소련의 수상 스탈린 사진이 그것이었다.

그 후 소련하면 회상되는 여러 가지 중 후르시초프 수상이 UN 총회 연설 도중 구두를 벗어 탁상을 두드리는 사건과, 체코 프라하로 탱크를 앞세우고 무자비하게 쳐들어온 소련군에 맞서면서 자유를 갈구하며 봉기한 시민들의 구원을 요청하는 라디오 방송의 S.O.S 외침이 나의 귓전에 생생하며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소련하면 뿔만 안 달린 마귀를 생각하면서 오싹해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차이코프스키, 무졸스키, 림스키코르샤코프, 라흐마니노프 같은 주옥같은 음악의 작곡가들, 푸시킨, 도스엡스키, 톨스토이, 이반 뚜르게네프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호들의 나라, 볼쇼이, 키로프 등 환상의 발레 이러한 러시아는, 나의 사춘기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나의 정신세계에 고향 같은 아련한 그리움이 들기도 하는 곳이다. 바로 그런 러시아로 나는 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6ㆍ25 동란의 총성이 멈추고 소위 1ㆍ4 후퇴에서 서울 수복으로 서울로 돌아왔던 시절이 나의 본격적인 중학교 시절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에게 문화라는 것은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그리고 잿더미에서 막 시작한 번역문학이 전부라 할 수 있었다.

하기야 당시 명동에 있었던 시공관에서 어쩌다가 오페라가 공연되기도 했고, 신협극단이란 것이 있어 햄릿 같은 연극의 막이 오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라트라비아타, 카르멘 같은 오페라에 입이 벌어지기도 했고, 명배우 김동원씨의 ‘햄릿’에서 몇 개의 대사를 흉내 내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역시 우리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은 번역문학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들은 우리에 앞선 세대의 사람들을 ‘꼰대’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봉건주의자’라고 몰아세웠다.

그러한 나에게 가히 충격에 가까운 감동, 흥분을 준 것이 러시아 작가 이반 뚜르게네프가 쓴 소설 ‘부자들(Fathers & Sons)’이였다.

주인공이 삼촌과 갖는 이념, 사상의 갈등과 논쟁은 내가 ‘꼰대’들에 향한 그들의 ‘봉건주의적 사고’를 대신해 퍼부은 맹공 같았고, 예쁜 여학생과 눈만 마주쳐도 공연히 가슴이 설레던 나의 수줍은 마음을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이 대신하고 있는 듯 했다.

수줍음을 나누고… 더듬는 말로 (half words, half smile)…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행복…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에 휘감는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확인되는 사랑에서 갖는 환희….

어쩌면 상상 속에서 나는 그 순수한 사랑(platonic love)의 주인공이였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그 한권의 소설이 나의 어린시절에 각인된 러시아가 그리움으로 아니 어쩌면 나의 마음속의 그리고 추억속의 고향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뿔은 안 달렸으나 소련이라는 악마의 나라 쪽으로는 눈을 감고, 어린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러시아로만 눈을 뜨고 지금 비행기에 앉아있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어린 H 여행사 미시즈 한이 내가 뚜르게네프의 소설이야기를 하자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어머 이 선생님도 작가 이반 뚜르게네프를 좋아하시는군요. 사실 나의 여고 시절 우리 무용선생님이 무용은 안 가르치고, 교장선생님이 올까 파수를 세워 놓고 소설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인기 최고였지요. 그 중 이반 뚜르게네프의 ‘첫사랑’이 최고 인기였고 당시 정말 우리 교실은 온통 그 이야기로만 시간을 보냈지요. 하지만 지금 내가 소설을 다시 읽는다면 그런 감동을 다시 느낄지요….”

비행기가 이륙한지 6시간이 지났다. 러시아 여행을 한 후, 으스스하고 춥고, 구름낀 흐미한 저녁, 음모, 배신, 고뇌 그리고 정욕이 담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무대 같은 중세도시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발틱 3국도 방문할 나에게 가벼운 흥분이 다시 인다.

“이제는 눈을 좀 부쳐야지.” 비행기 뒤 칸 스튜어디스에게 꼬마 버번위스키를 청했다. “6달러였지, 아마.” 주머니를 뒤지는 순간 “그냥 서비스로 드리죠” 미소 띤 스튜어디스가 꼬마 버번위스키 한 병을 건네준다.

“공짜라… 어찌 시작이 좋은걸….”

버번 콕 칵테일이 따뜻하게 나의 뱃속을 내려간다.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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