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 플레이스] 독립기념일 핫도그 대회
박용필/논설고문
시계 바늘이 정오를 가리키면 관중의 환호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20여명의 선수들이 차례로 입장한다. '세계 핫도그 먹기대회' 참가자들이다. 지역 예선을 통과해 이날 본선에서 챔피언을 가린다.
제한 시간은 10분이다. 지금까지 세계기록은 68개를 먹어치운 조이 체스트넛. 지난 해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겨 대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핫도그 먹기 최강자다.
이 대회가 한인들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이선경(소냐 토머스)씨가 여자 신기록을 작성한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해 무려 41개를 먹어 '핫도그 여왕'으로 꼽혔다.
먹기대회가 야구와 농구.풋볼.자동차 경주와 함께 미국의 5대 스포츠라는 주최 측의 홍보가 먹힌 탓인지 '네이던스' 핫도그 대회는 ESPN이 매년 생중계한다.
핫도그 챔피언십은 대회가 지닌 역사의 무게 탓에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네이던스 창업자는 네이던 핸드워커. 폴란드 출신의 이민자다. 핫도그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한 그는 고객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영어는 더듬거렸지만 그가 만들어준 핫도그의 맛과 성실함에 반한 것. 손님 중엔 유명인사들도 더러 있었다. 이들이 개업할 것을 적극 권유해 코니 아일랜드에 네이던스 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그 때가 1916년이다.
가게는 늘 손님들로 북적여 네이던스 대신 '텐 디프(Ten Deep)'로 불렸다. 고객들이 열 줄이나 깊게 늘어서 있어 이런 별명이 생겨났다.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도 줄을 서 사 먹었다니 당시 네이던스의 명성을 가늠할만 하겠다.
핸드워커는 자신과 같은 이민자를 차별 않고 부자로 만들어준 미국이 고마웠다. 그해 독립기념일이 가까워오자 핫도그 먹기 대회를 개최하기로 마음 먹었다.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가장 애국하는 사람'이라며 널리 홍보했다. 상금도 두둑히 내걸어 신청자들이 몰렸다. 첫 대회 챔피언은 제임스 멀런. 기록엔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그가 12개를 먹었다고 쓰여있다.
대회가 중단된 것은 딱 한 번. 나치 독일이 자신의 조국 폴란드를 침공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이에 항의 대회를 걸렀다.
넬슨 록펠러 뉴욕주지사도 단골이었다. 네이던스에서 핫도그를 먹지 않으면 비애국자로 찍혀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우스개를 남길 정도였다.
루디 줄리아니 시장 재임시절 네이던 핸드워커는 '뉴욕을 빛낸 100대 명사'에 수록되는 영광을 안았다. 조 디마지오 앤드루 카네기 등 수퍼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
핫도그는 원래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식품이 아니었다. 개고기를 구워 판다는 소문이 나돌아 핫 도그(hot dog)란 흉칙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한 이민자의 나라사랑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바꿔놓은 것이다.
이민자의 꿈이 담겨져 있다는 핫도그. 어쩌면 핫도그 하나가 미국의 건국이념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여럿(이민자들)이 모여 하나(From many one)를 이룬다는 그 이념이다.
4일 대회에서 한인 이선경씨가 기록경신에 성공해 '진정한 애국자'란 칭송을 들을지 이번 독립기념일 연휴의 또다른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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