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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주년 그후<2>… 전쟁 후 미국 이주 러시

참전했던 미군 보면서 아메리카 새롭게 인식
동남부 6개주 일대에 참전용사 70여명 거주
한인사회 기틀 마련

김광현 전 애틀랜타 한인회장(88)은 60년 전을 잊을수 없다. 6.25 발발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당직 장교였던 그는 이날 새벽 북한의 남침 소식을 듣고 “같은 동족을 이렇게 침략할수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40여년 후 미국에 정착하고 북한관광을 간 그는 관광안내원이 “북침설”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날 그때를 겪은 사람이 엄연히 여기 살아있는데, 미국에 있어도 북한에 있어도 그때 일은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회상했다.

△이민사회 주축된 참전용사=한국 전쟁 이후 한인들의 미국 이주가 러시를 이뤘다. 이주자중에는 한국전 참전자들도 적지 않았다. 재향군인회 미남부지회에 따르면 남동부 6개주에 거주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70여명이다. 이들은 미국 이민 후에도 군 경력을 살려 이후 남동부 이민사회 주축으로 활약했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중위였던 김광현 씨는 대령으로 제대한 후 83년 미국으로 이민온 후 19대 애틀랜타 한인회장, 초대 재향군인회 미남부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도라빌에 거주하는 김종구(82) 씨는 한국전 참전 후 대위로 제대한데 이어, 페이엣빌 한인회장, 동남부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 씨는 “군 출신들은 결속력이 좋고 집단 운영에 능하며 반공정신이 투철했다”고 회상했다.

△초기이민 기틀잡은 유학생=참전자 뿐만 아니라 전쟁 중 미군과 인연을 맺은 당시의 청소년들도 미국에 건너 왔다. 이들은 민족의 비극이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향학열을 불태웠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애틀랜타에 정착해 한인사회가 기틀을 잡는데 일조했다.

테네시 주립대 김근하 명예교수는 “서울대 공대 입학 직후 한국전쟁이 터져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UN군 심리작전과에 취직해 영어번역 업무를 맡았다”며 “당시 같이 일했던 심리전 장교 셰퍼드 중위와 보증을 서 줘, 듀크 대학 입학에 성공할수 있었고 이후 남동부에 정착했다”고 회상했다.

스와니에 거주하는 한국국제교육원 이유상 대외협력 고문은 “한국전쟁 당시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은 부산 후퇴 후에도 천막학교에서 공부해야 했다”며 “가난한 와중에도 영어를 배우고 싶어 미 문화원에 부탁했고, 그 인연으로 유학에 성공할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이민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이들이 집중적으로 이민온 1950~1970년대 애틀랜타 등 미국 남부 지역에는 흑백 인종차별이 엄존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한인사회 터전을 일궈냈다. 전쟁을 겪으면서 다져진 굳센 의지가 힘이 됐던 것이다.

이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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