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문예마당]옛 영화를 보며

강치범

영화관에 갔다. 해묵은 영화를 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가 너무 좋아해 따라 나섰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어 우리 부부와 같이 온 두 가족은 모두 표를 살 수 있었다. 극장 안에 들어서니 빈자리는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같이 온 일행은 뿔뿔이 헤어져야 했다.

좋은 위치에 자리가 비어 있을 턱이 없는 데 뒤쪽 맨 끝에서 두 번째 줄 중앙에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반신반의 하며 그쪽으로 갔다. 자리가 비었느냐고 물어보니 안경을 낀 영감님이 손짓까지 하며 어서 와 앉으라고 했다. 그 분의 친절이 고마웠다.

오늘의 행운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등을 의자에 기대는 순간 몸이 용수철에 튕겨 난 것처럼 앞으로 수그러졌다. 옆 사람에게서 나는 악취 때문이었다. 양쪽이 다 말쑥한 신사 차림인데 참으로 황당 했다.

당장 그 자리를 떠나려고 일어서려는 순간 발밑에 깔려 있는 영화 안내서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이 자리에 앉았다가 허급지급 도망친 흔적인 듯싶었다. 나는 잠시 망설여졌다. 되도록이면 옆 사람이 민망하지 않도록 슬그머니 내빼고 싶었다. 그래도 양쪽 중 어느 쪽에서 냄새가 났는지 알아보고 싶어 등을 의자에 다시 한 번 기대보았다. 냄새는 영감님에게서 났다. 자신의 냄새를 알고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감님도 예외는 아닌 듯싶었다.



냄새를 다시 맡는 순간 나는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 치과 대학생인 내가 해부학 실습실에 서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시신 한 구를 해부하기 전에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었다. 시신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그것은 소독약과 방부제까지 합세한 야릇한 것이었다.

사십 년이 지나도록 다시 맡아보지 못한 그 냄새가 왜 영감님에게서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병 때문일까. 아니면 꼭꼭 숨겨진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졸지에 당한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어느새 그 냄새가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것은 때가 되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냄새인 것이 분명했다. 지금 내가 도망친다고 벗어 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나의 냄새라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그것은 얼뜬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그런지 나는 그 자리에서는 얼뜨기처럼 굴고 싶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영화를 보기로 작정했다. 옆 사람과 머리만 나란히 하지 않으면 괜찮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잠시도 등을 의자에 기댈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시종일관 구부리고 있는 나를 영화에 심취한 영화광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날 상영 한 영화의 제목은 '모방의 삶(Imitation of Life)'였다. 영화를 만든 지 오십주년 기념으로 단 하루만 재상영한다고 했다. 화면이 흑백일 것으로 추측했는데 천연색이라 반가웠다.

내용은 흑백 간에 인종 차별이 심했던 시절을 반영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흑인인데 친딸은 백인처럼 보였다. 그것이 모녀가 겪을 비극의 시작이었다. 딸은 어머니와의 인연을 끊고 백인의 삶을 살아 보려고 발버둥쳤다. 결국 어머니는 한이 쌓여 죽고 말았다. 딸이 어머니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영화가 끝나자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 영화에 출연했던 어머니와 딸이 무대에 나타난 것이었다. 방금 전에 감동 깊게 본 영화의 주인공이 관객 앞에 나타났을 때의 감격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이미 반세기라는 세월이 흘러버린 영화의 주인공들이라니.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무대 앞으로 다가가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영화 속의 그들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어느새 딸의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어머니는 걸을 수조차 없어 손자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나와 앉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그들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오분간이었다. 오십년이란 세월이 단 오분만에 흘러버린 것 같았다. 시간이 때로는 과학이 아니라 느낌일 때가 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긴 세월이 잠깐이라고 여겨 질 때가 있지 않은가.

무대 위에서는 대담이 시작 되었다. 나는 내가 앉았던 자리를 지나쳐 극장 맨 뒤쪽 출입구 쪽에 서서 대담을 들었다.

지나오는 길에 나의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영감님 곁에는 은발의 할머니가 머리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었다. 다정스러운 모습이 부부인 듯싶었다. 오래 된 부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추하고 냄새 나는 것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정이란 아무래도 연륜이 쌓여야 가능 할 테니까.

우스갯소리로 곱절로 깊은 정은 눈만 멀게 되는 게 아니라 코 까지 그렇게 되는가 싶었다.

하기야 오랜 세월 동안 늙고 병든 남편 곁을 지킨 아내라면 더욱 그럴 법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무대 위의 질문자는 영화에서 딸의 역할을 맡았던 분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현직 영화감독이라고 했다.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는 결혼과 동시에 배우 생활을 청산해 버렸는데 그렇게 한 것이 후회스럽지 않은가요?"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어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다."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가 아카데미 조연상으로 지명되는 영예를 누렸지만 명성보다 가정을 택한 그녀였다. 청초한 꽃 한송이가 씨앗 두 개를 품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대담은 약 반 시간 정도 진행 되었다. 대담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옛 영화라면 낡은 것으로만 취급하고 보기를 꺼려하던 내가 오늘 밤에는 옛 영화의 재미에 흠뻑 취하고 있다. 감동적인 영화는 세월이 반세기가 흘러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무대 위의 주인공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영화 속의 주인공은 여전히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영화 속의 삶 그것에 비한다면 우리 네 삶은 너무 짧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의 잠재의식은 여전히 영화 속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 맘 때쯤 낯선 소년으로부터 처음으로 할아버지라는 칭호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새롭다.

누가 그랬던가. "너도 늙으리." 오늘 밤 따라 그 말이 어찌 그리도 절실한가.

▷USC 치과대학졸업
▷'창조문학'수필 등단
▷미주문협 수필분과 위원장 역임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