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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미스터 크로우를 기다리며…

이수임/화가·브루클린

"정말 내 앞에 앉아 밥 먹은 사람이 미스터 크로우였다구?” “그렇다니까.”

"그래! 난 왠 이상한 녀석이 내 앞에 앉아 있나 했지. 그 옆에 젊은 여자는 또 뭐야?” “애인이라잖아요.” “꽤 어려보이던데…” “아이고 다리야 괜히 이 옷을 입었어.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호텔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는 굽 높은 신발을 벗어 던졌다.

얼마 전, 남편(화가 이일)과 나는 남편이 속해있는 갤러리디렉터와 함께 텍사스 댈러스의 크로우아시안아트콜렉션(Crow Collection of Asian Art)이라는 미술관에 개인전을 하러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 리무진이, 그것도 아주 긴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리무진을 다 타다니! 공항에서 호텔까지 분명히 가까운 거리는 아닌듯 싶은데 왜 난 리무진을 탔다가 달려보지도 못하고 바로 내린 느낌이 들었다. 리무진 안에서 보는 밖의 풍경은 작은 TV 화면만 보다 갑자기 크고 질좋은 화면을 보는듯 시원해서 시간이 그리 빨리 달아나는 줄도 몰랐다.

도착 후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디너는 ‘미스터 트러멜’ 와 함께 하기로 되어 있었다. 트러멜 S. 크로우씨는 1986년 월스트릿저널이 보도했듯이 미국에서 가장 큰 개발회사를 창설한 트러멜 크로우의 막내 아들이다.

명문 대학에서 중국 역사를 전공한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았으며 아시아미술품을 수집한 아버지가 세운 크로우아시안아트콜렉션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하다.

미술관에 초대해준 것도 고마운데 디너까지나. 예의를 최대한 갖추느라 평상시에는 입지도 않는 정장에 남편은 넥타이까지 맸다. 우리가 약속된 식당에 먼저 나타나 미술관 디렉터와 몇 마디 주고 받고 있었다.

또 다른 정장 차림의 콜렉터라는 두 남자가 들어왔다. 다음은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포니테일에 허름한 옷을 입은 50대 중반의 남자가 빨간 드레스 차림의 젊은 여자와 나타났다. 청바지에 검은 중국 전통 상의를 걸친 영화 ‘대지’의 한 장면을 현대화한 분위기를 연상케하는 이 남자는 우리 부부에게 다가왔다.

악수를 청하며 ‘미스터, 미스에스 리’냐며 자기는 트러멜이고 함께 온 여자는 걸프렌드라고 소개했다. 흔히 기억하기 쉬운 미국 이름인 피터, 존 그런 이름도 아닌 생전 들어본적도 없는 ‘트러멜’ 고개를 가웃거리며 남편을 향해 “우리말고도 초대한 사람이 많은가 봐.”하니 남편은 “댈러스 화가도 초대했나보지.”라고 대꾸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정장 차림이었고 오직 이 사람만이 예술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값비싼 정장을 한 점잖은 모습의 ‘미스터 크로우’는 끝내 나타나지 않은 채 남편은 트러멜 앞에 나는 그의 여자친구 앞에 앉아 식사는 시작됐다. 미국에 그리 오래 살았어도 영어가 영어가 시원치않아 우리 부부는 물어보는 말에나 몇 마디 대답하며 조용히 그들 이야기를 들었다.

듣다보니 바로 남편 앞에 앉은 이 포니테일의 주인공이 미스터 크로우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초대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미스터 크로우를 기다리는 듯한 자세였다.

뭔 식사를 그리도 오래 하는지 거기다 코스가 다양해 난 맨 처음 나온것만 먹어도 배가 부른데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아예 주방장까지 나와 한마디를 거드니 밥을 어디로 먹은 건지 정신이 없었다. 식당을 나와 호텔까지 모시겠다며 따라오는 운전기사를 따돌리고 우리는 아무도 없는 어둠 속의 댈러스 다운타운을 자유의 몸이 되어 걸었다.

"도대체 미스터 크로우는 왜 초대해 놓고 나타나지 않은거야.”라고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댈러스 다운타운이 다 울리도록 배를 잡고 웃고 웃다 뒹굴 뻔했다.

"돈 많은 사람은 어떤 옷을 입어도 용서가 되고, 돈 없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 멋을 내도 티가 나지 않는게 돈의 힘인가봐.” 난 힙스터차림으로 우리를 편하게 대해준 미스터 크로우가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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