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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멋있는 여자

P씨가 저녁을 산다길래 한국식당에 갔다. 몇 년만에 나를 보는 주인여자가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몇번이나 갸우뚱댄다. 내 소개를 했더니 주인 여자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진다.

“아 아니, 진짜로 이계숙씨가 맞아요?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네. 너무 예뻐졌어요.”

외모와 관련된 발언에 초연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쨌든 예뻐졌다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흐뭇한 웃음을 웃었더니 옆에 있던 K씨가 거든다.

“내가 요즘 세상사는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동안 이계숙씨 못생겼다고 놀리는 재미로 살았는데 최근에 놀릴 수가 없을 정도로 예뻐져 버려서 말이지….”



얼마 전부터 예뻐졌다는 말을 부쩍 많이 듣게 된다. 내 평생을 통털어 서너번 들어봤을까말까 하던 말을 요즘들어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오랜만에 나를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열에 아홉은 그 말을 한다. 심지어는 성형수술을 했냐고 물어보는 사람까지 있다. 아이고. 타고난 생김새가 어디로 가겠나.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 그리고 나이 오십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내가 예뻐졌으면 얼마나 예뻐졌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예뻐졌다기보다 인상이 많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다. 지난 번에 쓴 글대로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웃으며 살았더니 나이가 들면서 안정스럽고 부드럽게 얼굴이 변한 것이다.

사실은 내가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바로 ‘멋있다’는 말이다. 나는 철이 들면서, 그러니까 거울을 가까이 하는 나이가 되면서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야 나는 절대 예뻐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대신 멋있고 매력있는 여자가 되어 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용모는 반드시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지만 멋있고 매력있는 여자가 되는 것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멋있는 여자가 되려면 몸에 군살이 없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 운동을 해서 살이 찌지 않도록 조심했다. 투실투실 살찐 몸은 자기 관리를 태만하게 했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또한 비싸고 좋은 옷을 걸쳐도 살이 찐 몸은 맵시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비록 못생긴 얼굴이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성형수술은 물론이고 한때 한국 여성들 사이에 광풍처럼 유행하던 눈썹 문신, 아이 라인 문신 같은 것은 일절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 예뻐졌던 여성들이 내 주위에도 더러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눈에 띄게 예뻐졌던 얼굴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본다. 특히 한국 연예인들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인 것 같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지난 번 한국 방문 때도 동생 집에서 내내 TV만 보다 돌아왔다. 그러나 화면에 나오는 배우들 이름을 올케에게 연신 물어봐야 했다. 낯이 익긴 익은 배운데 하도 손들을 많이 봐서 누가 누군지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틀에서 뺀 인형처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눈깔 사탕을 한 개씩 물고 있는 듯 잔뜩 부풀은 볼, 하늘만큼 높게 치켜올린 코, 있는대로 잡아당겨 마치 화상 흉터 같이 매끈거리는 이마, 서양인들 보다 더 깊은 쌍꺼풀. 얼마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지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고역일 정도였다. 그런데 가뭄에 콩나듯 자기 본연의 모습 그대로 늙어가는 배우가 두어명 있었다. 뛰어난 미모가 아니라서 항상 가정부나 국밥집 아줌마들로 나오던 배우들이었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그들의 얼굴은 오히려 편안하고 여유로와 보였다. 그들은 더 이상 가정부나 국밥집 아줌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재벌집 안방마님 역할을 한다해도 전혀 어색할 게 없어 보였다. 생김새에 따라 차별등급을 받는다는 연예계에서 성형수술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연스런 얼굴을 지키고 있는 그들은 참 멋있는 여자들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멋있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도 ‘멋있는 여자’라는 말을 늘 듣고 싶다.


이계숙(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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