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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현충원 가는 길

권소희/소설가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의 변화에 내 눈은 휘둥그레 정신이 없다. 캘리포니아 어느 동네보다도 번화한 쭉쭉 뻗은 빌딩 앞에서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잊어서는 안 되는데 잊혀져서는 안 되는데.'

현충원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주문이라도 외듯 입속으로 가만가만 읊조렸다. 세상을 나무라듯 아니 그건 나를 향한 쓴 소리였다.

팝콘을 씹으며 '람보'에 흥분하고 '아이언 맨'으로 전쟁을 즐기는 문화인으로서의 품격만 있을 뿐 전쟁의 기억은 어느 새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인스턴트 커피를 뽑아 마시듯 전쟁이 상품화 된 세상에서 나는 전쟁영화 티켓을 사고 1시간30분 동안 스펙터클한 쾌감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돌비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포탄 소리에 짜릿함을 느끼며 사실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분장술에 감탄하며 전쟁문화인으로 전쟁을 음미할 뿐만 아니라 은근히 책임까지 떠맡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 나를 지켜주겠지. 나 말고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었던 그 누군가의 비석이 즐비한 현충원에 당도했다. 녹음이 우거진 계룡산의 위엄은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만든다. 산 자의 삶이 부끄러워지는 장소에서 돌판에 새겨진 아버지의 함자를 눈으로 읽었다. 육군 대위 권. 만. 중.

이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드문드문 아버지가 들려주던 전쟁 일화도 몇 가지만 생각날 뿐. 그것도 이렇게 비석이나 마주해야 가물가물 떠오른다.

"행진을 하다가 모르고 죽은 흑인 병사의 시체를 밟았어. 물컹하고 시체를 밟는 순간 썩은 물이 군복에 튀었지…."

그 죽은 흑인은 누구였을까. 무슨 운명을 타고났기에 남의 나라 땅에 와서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파리 떼의 밥이 되고 오고가는 사람들 발길에 차이고 밟히게 되었나. 게다가 썩은 오물을 묻히고도 진군해야 했던 아버지의 담담함은 전쟁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움이었다.

전쟁터에서 아버지는 온몸으로 죽음과 맞닥뜨렸지만 살아남은 자의 보답은 고작 일 년에 한 번 현충일에 조화를 들고 찾아와 요란스레 비석 사이를 지나가는 게 전부다.

목덜미와 팔뚝에 휘감기는 유월 땡볕은 왜 이다지 무더운 건가. 흠뻑 비라도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애꿎은 날씨를 들먹이며 더위 탓으로 돌려도 가슴은 오래 묵은 체증처럼 더부룩하기만 하다.

'세상은 이렇게 좋아졌는데 아버지 덕에 우리는 이렇게 잘살게 됐는데….'

죽음을 눈으로 목격한 아버지에게 이 세상일이라는 게 한 판 벌어지는 마당극처럼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벌써 죽었어야 했을 내가 너무 오래 살고 있다고 숨을 쉬고 있는 호흡마저도 미안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문명이 주는 혜택은 한갓 부질없는 일이었다. 누군가 지켜주지 않으면 이 눈부신 비약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잘 살기 위한 3차 방정식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뿐이었다.

핏빛보다 더 붉게 나염된 장미 한 다발을 화병에 꽂았다. 이 가짜 꽃은 내가 떠난 후에 이곳에 남아 햇빛을 온몸으로 받고 눈과 비를 맞으며 내 대신 아버지의 말벗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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