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 영어 칼럼니스트 조화유씨, 큰형은 국군…작은형은 인민군 '가족간 총부리'
8살 때 폭정 체험…서울서 경남까지 피난길
한국전 알리려 창작집 '전쟁과 사랑' 출간
◇공산당 폭정 몸서리
서울에서 살던 조씨는 8살이던 초등학교 2학년 6.25동란을 만났다. 통신수단이 발달되지 않던 시절 ‘전쟁이 터졌다’는 말이 소문으로 돌았다. 하지만 당장은 시큰둥했다. 일부 주민들은 짐을 꾸려 집을 떠나기도 했지만 조씨 가족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다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점령됐다. 어느새 다시 학교를 나오라는 통지문도 왔다. 어린 조씨는 학교에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와 인민군 군가 등을 배워야했다. 또 작은 형은 인민군에, 누나는 여성동맹에 강제로 징집돼 부당한 군역과 노역을 감당해야 했다.
◇자유 찾아… 남으로, 남으로
배고픔은 더욱 참기 어려웠다. 동네 근처 남의 토마토 밭이나 참외 밭에 들어가 서리하기도 일쑤였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판단에 조씨 가족은 고향인 경남 거창으로 이주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차가 있기는 했지만 인민군이 군사용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걸을 수밖에 없었다. 군대간 두 형과 난리통에 병사한 막내 동생을 제외한 남은 식구들이 모두 나섰다. 다행히 여름철이어서 노숙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역시 먹을 것이 없어 주린 배를 움겨 쥐어야 했다.
급기야 피난 보따리에서 값나가는 물건을 식량과 바꿔 먹기도 했고 인심 좋은 농가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물론 중간중간 폭격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한달이 꼬박 걸려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가족간 총부리… 상잔의 아픔
큰형은 국군 공군조종사였다. 그런데 작은형이 인민군에 끌려가는 바람에 조씨 가족은 한지붕에서 남북이 갈려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양 진영 군대로 간 형들의 소식을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큰형은 L19라는 경비행기를 타고 고향 상공을 통과하다가 집에 편지를 떨어뜨려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주곤 했다. 돌멩이가 든 편지는 멀리 떨어진 이웃집 장독대에 떨어지기도 했다. 이 ‘우표 없는 속달우편물 투하사건’은 한동안 동네에서 화제거리가 됐다. 이 에피소드는 이번 중편소설 ‘전쟁과 사랑’에도 등장한다.
다행히 인민군에 끌려갔던 작은형 역시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 및 국군의 대반격을 받고 후퇴할 때 부대를 이탈, 고향 마을을 찾아왔다.
◇전쟁의 참상 제대로 알려야
조씨는 이번 저서에 6.25 당시 시대 상황과 남북 분단의 긴장 관계, 한국의 좌우 이념 대립 등을 주제로 한 3편의 소설을 수록했다. 여기에 남녀간 사랑이야기를 가미시켜 재미를 더했다.
조씨는 “젊은 세대에게 한국과 남북의 대치상황, 6.25의 참상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영한대역 6.25전쟁 이야기’도 저서에 포함시켰다.
영어공부를 미끼로 해서라도 제발 6.25 전쟁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한글로 작성되고 곧바로 영문으로 번역된 문장을 통해 전쟁 표현 등도 익힐 수 있다. 젊은 층의 관심을 끌고자 만화 삽화까지 곁들였다.
이밖에 창작집에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 종군 여기자 ‘마게리트 히긴스’의 6.25 관련 일화와 한국전 걸작 사진 10선 코너도 수록,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천일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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