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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김의 할렘에서 월스트릿까지-2] 아폴로 시어터…흑인문화의 정수를 느낀다

흑인 가수의 등용문…아마추어나이트 시작

1940년대 빌리 할리데이와 듀크 엘링턴이 이 곳에 섰고, 1960년대에는 스티비 원더와 다이애나 로스가 무대에 오르곤 했다.

아폴로 시어터(Apollo Theater)는 125스트릿, 애덤 클레이턴 파월 주니어 블러바드(7애브뉴)와 프레드릭 더글러스 블러바드(8애브뉴) 사이에 있다. 도로에 접한 부분은 매우 좁고 초라하지만 뒤통수 부분이 매우 길고 커서 뒤쪽으로 천장 높은 공연장을 품고 있다.

이곳은 1914년 시작해, 할렘 흑인문화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초기에는 흑인의 입장을 거부했지만 인근 라파예트 극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업가가 1934년 인수한 다음 흑인 전용 극장이 되었다.

같은 해 모든 흑인가수의 등용문이라는 아마추어 나이트가 시작되었다. 뮤지컬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드림걸즈’의 첫 장면, 세 명의 여자가 가발을 돌려쓰고 나가던 바로 그 경연대회다.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는 아마추어 나이트를 본 사람이라면, 레드 벨벳 객석으로 가득 찬 아폴로 시어터 홀이 방송에서 본 것보다 좀 작다고 느낄 것이다.

시 랜드마크=소년 시절부터 이곳에서 ‘심부름 보이’로 일하기 시작해 지금은 아폴로시어터 역사의 산증인으로, 양복에 행커치프를 갖춰 입고 안내해주는 자그마한 할아버지 빌리 미첼이 설명했다. “방송할 땐 홀이 좀 넓어 보이게 하는 특수 렌즈를 쓰거든….”

지금은 건물 자체도 뉴욕시 랜드마크로 지정되어, 로비의 샹들리에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전성기였던 1940년대 스타일로 복원된 상태다. 로비에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공연했던 수많은 스타의 사진을 오려 패널에 붙인 커다란 콜라쥬가 있다.

이 패널은 원본이라서 단독으로 사진 찍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 부분에서만 촬영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단단히 준다.

할아버지는 “스티비 원더가 열네 살,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이곳에서 처음 그를 만났지. 근데 그때 그가 나보다 한 살 많다고 속였단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러면서 아홉 살짜리 마이클 잭슨도 봤다 하고.

그 뒤 이곳은 할렘의 침체와 더불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바뀌었다가 1980년대에 음악홀로 재탄생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뉴욕주가 이 극장을 사들여 개보수를 거쳤고, 아마추어 나이트가 전국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이곳은 흑인문화의 기념비적인 뮤직홀이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백인, 존 레논과 오노 요코·콘·비요크도 공연했다. 2008년에는 일본의 와다 아키코가 이곳에서 동양 가수로는 처음으로 단독 공연했다.

1950년생 와다는 일본 R&B의 창시자로 아폴로시어터에서 데뷔 40주년 기념공연을 열었다. 큰 체구와 풍부한 성량, 철저한 인맥관리와 독설로 일본 연예계의 여제로 불리는 와다의 본명은 김복자(金福子), 사실 재일교포다.

마이클 잭슨 추모=2009년, 이곳에서는 아주 특별한 아마추어 나이트가 열렸다. 마이클 잭슨 사망 직후의 뜨거운 추모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마이클 잭슨 역시 어릴 때 이 무대에 섰다. 그러니 흑인문화의 정수 격인 아폴로시어터가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추모의 장을 여는 건 너무 당연했다.

뉴욕타임스에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고자 하는 사람은 오늘 오후 아폴로시어터로 오세요. 그리고 이번 주 아마추어 나이트의 참가자들은 마이클 잭슨의 춤과 노래만을 헌정합니다”란 글귀가 떴다. 그날, 나는 주저 없이 극장 앞에 나갔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끝도 없는 줄과 마이클 잭슨을 기리며 손수 제작한 플래카드와 꽃들이 보였다. 바로 인근에 위치한 뉴욕 주청사 건물은 아예 조기를 내걸었다. 각종 방송사 차량을 비롯해 여러 대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출동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뙤약볕 아래서 우산을 들고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질서정연했다. 그렇게 공통분모를 잃은 집단의 슬픔이 내 호흡기관으로, 살갗으로 따끔따끔하게 전해져 왔다.

그날 이후에도 아폴로시어터 앞은 마이클 잭슨 모양의 그래피티와 꽃들이 바닥을 덮었고, 흰 천이 내걸린 곳에는 방문하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빼곡 찼다.

예전에는 125스트릿을 따라 걸으면, 말콤 엑스를 비롯한 흑인문화의 아이콘을 이미지화해서 파는 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오바마 열풍이 불면서 그의 얼굴을 지폐 모델로까지 만들어 파는 상품이 등장했는데, 이제는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가 거리를 압도하고 있다.

탈색된 얼굴에 무너진 분필코가 아니라, 흑인 특유의 커다란 곱슬머리에 뭉툭한 코를 가졌던 청소년기의 귀여운 마이클 잭슨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게다.

안나 김은 한양대 도시공학과 졸업 후 LG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다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에서 부동산개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뉴요커도 모르는 뉴욕’을 출간했으며, 6월부터는 LA를 구석구석 탐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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