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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마지막 이어북 (Year Book)

아들이 이어북(Year Book)을 가지고 와서 펼친다. 고등학교에서 받은 마지막 이어북이다.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소중한 기록으로 들어 있는 이어북은 아들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두툼하게 담아내고 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사진은 물론, 많은 클럽들의 활동과 여러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학생들의 모습이 실려 있다. 그야말로 한 해 동안의 학교 학생들의 총체적인 기록이다.

초·중·고 시절, 오직 졸업하던 해에만 졸업 앨범을 받았던 나에게 아들의 ‘이어북’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마다 졸업 앨범 같은 것을 만들다니, 과연 그것이 좋은 것인가’ 라고 생각했던 나도 몇해 지나지 않아서는 익숙해지게 되었다. 해마다 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시사적인 일들까지를 기록하여, 말 그대로 학생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어북은 학생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일년 내내 이어북에 실릴 내용을 계획하고 취재하는 학생들의 수고와 노력이 없다면, 이어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과물로만 비교해도, 내가 중학교 때 속해 활동했던 교지편집위원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어북을 만드는 학생들은 많은 일을 한다.

나는 전에 이어북을 만드는 학생들로부터 이어북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작품’인지를 들은 적이 있다. 몇 일, 몇 주, 몇 달이 아니라 한 해를 꼬박 써서 만드는 이어북이 여러 차례의 교정 끝에 인쇄되어 손에 들어오면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기뻐한다.

이어북은 나중에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유명인이 되면 그들의 학생 시절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명인들의 이어북, 즉 유명인들의 학생시절 사진을 싣고 있는 이어북은 경매 사이트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유명 가수, 영화 배우, 정치인 들의 학생시절을 보여주는 이어북은 주로 같은 학교 동창들에 의해 공개되며,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이어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들은 자기가 실린 페이지를 열어 내게 보여준다. 음악 활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큰 사진으로 실려 있다. 두 페이지에 실린 네 명의 아이들은 나름대로 학교에서 음악으로 ‘튀는’ 아이들이다. 뛰어난 수준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아이들 중에, 아들은 편곡을 하고 작곡을 하면서 남성합창단을 이끌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제 이 기록은 평생 동안 아들에게 남을 기록이다. 그런데 아들이 또 한 페이지를 열어 보여준다.

그 페이지에는 아들이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반대했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들이 어떻게 아빠인 나를 설득했는지도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때, 아들이 무난하게(?) 인문학 분야를 공부한 후 로스쿨에 가기를 원했었다. 트롬본 레슨을 제외하고는 그 때까지 아들이 한 번도 음악 분야의 레슨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나는 아들의 재능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들의 재능을 확실하게 알았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길을 가라고 했을 텐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아들은 길고 긴 길을 거쳐서 나를 설득했다. 자기가 만든 음악을 컴퓨터로 연주시켜 나에게 들려주는 것은 예사였고, 자기가 만든 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에 나를 가게 했으며, 명문 로스쿨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해서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게 했다. 음악을 공부해도 후에 로스쿨에 갈 수 있다는….

아들은 그렇게 해서 자기 생각을 관철했다. 이어북에서 아들은 끝내 자기가 이겼다고(win) 쓰고 있었다. 그렇지 이 놈이 이겼지. 나는 아들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그 때를 생각한다. 그리고 훗날 우리 가족은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지 또 생각한다. 아들의 학교처럼 우리 집에 이어북이 있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이어북이 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써가는 이어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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