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0주년···내가 겪은 6·25] "죽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싸웠는데…한국 정부 관심 절실"
VA 거주 82세 변희선씨, 김일성 고지탈환 특공대장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가슴속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전우의 죽음을 수없이 목격해야 했던 22살의 젊은이는 그렇게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렸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젊은이는 어느덧 82세의 백발 노인이 됐다. 버지니아 애난데일의 한 노인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는 변희선씨.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을 정도로 노쇄해졌지만 6.25 전쟁 당시엔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전장의 영웅’이었다.
그가 군에 입대한 것은 전쟁이 터지기 전인 1948년. 고작 18살 때였다. 백골부대로 불리던 수도사단 3사단 18연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진급을 거듭했고 22연대 소속 특별공격대 대장으로 진두지휘를 맡았다.
“총 들고 수류탄 던지고…. 매번 ‘죽는다’는 각오로 전투에 나섰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총알이 나를 피해가더군요.”
전투는 참혹했다. 곳곳에서 수류탄이 터지고 총쏘는 소리, 비명 소리에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동료가 쓰러져나가고 피가 튀는 전쟁터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오로지 ‘싸워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앞으로 나가고 또 나갔다.
변씨는 김일성 고지 전투 때 1개 분대를 이끌고 고지 탈환을 이끈 주역 중 한명이기도 하다.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알 속을 뚫고 달려나갔다.
“지휘관이 약하면 모두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었 수 밖에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면서도 부상을 입지 않는 기적은 계속됐다. 전쟁이 끝난 후 준위로 임관, 72년 제대할 때까지 춘천 3보충대 제2 공수단에서 젊음을 바쳤다.
제대 후엔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고 그 뒤엔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며 바쁜 이민 생활속에 빠져들었다. 아들 둘, 딸 둘을 다 키워놓고 나니 어느새 6.25 전쟁 60주년을 맞았다. 남다른 감회에 젖다가도 한국 정부를 떠올리면 아쉬운 점이 많다.
“우리가 뭘 위해 싸웠습니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제 살아남은 사람도 얼마 안남았습니다. 해외에 있는 참전 유공자들이 조국에 대한 사랑을 더 느낄수 있도록 초청 사업 등을 더 확대해 줬으면 합니다.”
1928년생인 변희선씨는 워싱턴 지역 6.25 참전유공자회 회장을 지냈으며,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등을 수상했다.
유승림 기자 ysl1120@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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