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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주년…내가 겪은 6·25] 미군 ‘하우스 보이’서 장교로

링크 화이트<한국명: 서승원>씨,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눈물이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추운 겨울 어느 날 함흥. 우여곡절 끝에 미 육군 부대에서 막사 청소부로 일하던 8살 꼬마 서승원은 중공군의 반격으로 급히 후퇴를 하게 된 미군을 따라 남한으로 내려가게 된다.

‘적에게는 포크 한 개도 줄 수 없다’는 지침에 따라 모든 음식과 집기 등을 모조리 불태우려던 미군에게 부탁해 집 앞에 통조림 음식들을 수북이 쌓아 놓았다.

그리고 미군 아저씨와 함께 부모님에게 약속했다. “열흘 뒤에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그 뒤 이 꼬마 승원이는 고향 땅을 단 한번도 밟지 못하는 ‘함흥차사’의 주인공이 됐다.

2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한 식당에서 한인 링크 화이트씨를 만났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는 삐쩍 마른 체구에 강단 있어 보이는 모습이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6·25전쟁 당시 미군 부대에서 청소와 잔심부름을 하는 ‘하우스 보이’를 거쳐 12살까지 미군 부대의 바텐더를 하다 양아버지이자 인생의 영원한 ‘영혼의 친구’가 된 앨버트 트루먼 화이트 상사를 만났다.

미국에서 양부모와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화이트씨. 베트남전에서 무공 훈장을 받은 한인 장교가 됐다. 제대 후에는 부동산 사업가, ‘치사이의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출판하는 등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가 바로 60년 전 고향 함흥을 떠났던 꼬마 서승원이다.

한 편의 영화 같은 화이트씨의 인생 이야기를 듣기에는 3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도 모자랐다. 그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가도 뱃속 깊이 박혀있던 그의 아픈 응어리들을 끌어 낼 때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쑥스러워 했다.

이성은 기자 gracefu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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