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벌리힐스 맘-2] 베벌리힐스 판 3당4락
'하버드 프로젝트'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미국의 부촌 베벌리힐스의 대표적인 품절남 '로버트 레이(Robert Rey.49)'는 스타급 성형외과 의사다. 품절남이란 이미 임자가 있어 품절된 아까운 남자란 뜻이다. 그는 의사들의 일상을 생생히 다룬 TV 프로그램 '닥터 90210'에 출연해 유명해졌다. 명문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그의 인기에 한몫 했다.
마침 '베벌리힐스 맘' 2탄 기사를 준비하던 터에 그가 하버드대에 지원한 고등학생들을 면접보게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버드대는 지역에 사는 동문을 시켜 지원자를 인터뷰하는 절차가 있다. 닥터 레이를 포함한 베벌리힐스 학부모들도 자녀를 하버드대 같은 아이비리그(미 동부의 8개 명문대)에 보내려 애쓴다.
그 내막이 어떤지 궁금했다. 지난 4일 오전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나오는 로버트 레이와 아내 헤일리 레이(Hayley Rey.36)를 만났다. 1남1녀 딸 시드니(10).아들 로비(6)를 두고 있다.
"로스앤젤레스(LA).어바인.샌디에이고 같은 캘리포니아주 남부 지역에서 올해 23명이 하버드대에 붙었어요. 모두 성적이 뛰어나더군요."
그는 "자녀를 하버드대에 보내려는 베벌리힐스 엄마들의 '성적 올리기' 노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말했다.
1~2학년 과정에선 부모들도 '인성교육'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3학년부터는 분위기가 바뀐다. 학부모들은 이때가 학업의 '기본기'가 형성되는 시기라고 본다. 여기서 떨어지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초등학교 3~4학년 전후로 아이들을 다잡는 한국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사립 중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ISEE)' 준비도 3학년부터 시킨다. 이러니 '초등학교 3학년 때 준비하면 붙고 4학년이면 떨어진다'는 말까지 나온다. 베벌리힐스 판 '3당4락' 신드롬으로 불릴 만하다. 한국에서 3당4락은 흔히 대학 입시에서 '3시간 자면 합격이고 4시간 자면 불합격'이란 의미로 많이 쓰였다.
ISEE 시험은 초등학교 사교육 시장의 팽창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ISEE 성적 분포를 보면 이유가 나온다. 응시자의 성적은 9등급으로 나뉜다. 숫자가 높을수록 우수하다. 평균은 5등급이다. 다른 과외수업 없이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는 학생이 시험을 보면 7등급쯤을 받는다. 결국 응시자의 상위 4%만 9등급을 받는다. 그런데 명문 사립 중학교 지원자들은 대개 9등급 성적표를 갖고 있다. 따라서 높은 ISEE 성적을 얻기 위해 중학교 입시에서도 대입 수능시험(SAT)처럼 과외가 필요해진 것이다.
레이 부부를 포함해 학부모들은 "공부만 잘한다고 마음 놓는 게 아니다"고 말한다. 공부와 함께 '캐릭터 만들기'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수상 실적.학교 회장 같은 자녀들의 스펙(spec)을 키우려 공을 들이지만 베벌리힐스 역시 만만치 않다. 비슷비슷한 입시 지원자들 사이에서 튀어야 살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체능 특기생에 선발되기 위해 학생들 시간표엔 테니스와 피아노 과외가 추가된다.
구체적으로 하버드대를 원하는 학생이라면 '리더십'에 가장 신경을 쓴다. 한곳에서 '회장'을 한 것이 10곳의 회원 활동보다 평가를 받는다. 레이는 "하버드대는 지금이라도 당장 강단 앞에 서서 위축되지 않고 청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연설을 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의 하버드대 지원자 인터뷰에서 만난 여학생을 예로 들었다. "장래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그가 물었다. 여학생은 로버트 레이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흔들림이 없었어요. 여성 대법관이 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죠.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다른 예를 들었다. 아시아계 학생이었다. 성적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소심했다. 레이는 "아시아계 학생들이 수줍어하는 문화가 있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하버드대에 가려면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사립학교에 다니고 과외로 성적을 올린 학생은 하버드대 지원자 중엔 너무 많아요."
결국 어려웠던 레이의 유년 시절처럼 켜켜이 쌓은 '나만의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이런 관점에서 베벌리힐스의 평범하고 부유한 삶은 어쩌면 명문대 진학의 '독(毒)'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엄마들의 걱정이 시작된다. 레이는 TV 쇼의 스타답게 청중을 위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모두 테니스와 피아노를 특기로 적어 내요. 하지만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나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 쉽나요. 난 아이에게 주짓수(K1 경기에 자주 등장하는 브라질 격투기)를 가르칠 거예요. 주짓수 고수가 되면 학교 레슬링 팀에 들어가기 쉬울 테니까요. 하하."
'아메리칸 드림' 이룬 닥터 로버트 레이
갱이 될 뻔한 브라질 소년, 할리우드 의사로 거듭나
1974년 브라질 상파울루의 빈민가. 12세 소년이 모르몬교 선교사의 손을 잡았다. 소년은 부르짖었다. “미국에 가고 싶어요. 여기서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갱이 되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뿐이에요.”
불량배들과 어울리다 이미 두 차례나 감옥을 경험했던 소년. 그는 11세 때까지 침대에서 잔 적이 없었다. 술에 절어 살던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살릴 능력이 없었다. 소년은 망가진 집안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미국행 모험을 택했다. 모르몬 교도들은 그를 유타주에서 키웠다.
4년 뒤엔 브라질에서 엄마가 왔다. 엄마는 허드렛일을 하며 그의 학비를 댔다. UCLA 의대와 터프츠대 의대에서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선 성형외과 펠로를 했다. 부와 명예를 쥘 수 있는 성형외과 의사는 브라질 소년들에겐 우상이다. 배우와 가수, 모델 등이 몰려 있는 ‘꿈의 도시’ 베벌리힐스에 성형외과를 열어 대성공을 거뒀다. 개업 의사이자 방송인인 로버트 레이의 영화 같은 인생 이야기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무기는 공부였다. 지금은 저택을 사자고 조르는 아내에게 대번에 ‘OK’를 외칠 만큼 돈을 잘 번다. 가슴 확대 수술과 미용 성형이 주 전공. 여배우들 사이에서 솜씨가 좋은 것으로 소문나면서 명성을 얻었다. 광고를 찍고,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유명 일간지에 기고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스릴러 영화 ‘세븐’의 의학 자문을 맡기도 했다.
2004년 성형수술을 다루는 리얼리티 쇼 ‘닥터 90210’에 고정 출연하면서 자신이 스타가 됐다. 베벌리힐스의 우편번호인 ‘90210’을 딴 이 쇼는 환자와 의사의 상담부터 수술 장면, 수술 전후 모습 비교까지 성형수술의 전 과정을 다룬다. 부인 헤일리(36)와 딸 시드니(10), 아들 로비(6)와 함께하는 일상생활도 쇼에 자주 등장해 레이 가족은 할리우드의 명사가 됐다.
TV 스타답게 레이는 몸도 좋다. 네온 색깔의 튀는 상의 속엔 태권도로 잘 다져진 초콜릿 복근이 숨어 있다. 홈페이지에 검은띠를 차고 태권도 이단옆차기를 하는 사진도 띄워 놓았다. 브라질 무술 주짓수도 고수다. 그는 성공에 취해 폼만 재는 속물은 아니다. “장차 브라질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어서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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