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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주' 윌리엄스버그, 올 여름 온가족이 역사기행 가볼까

유적지 원형 그대로 보존…그당시 생활모습 재현
이름 알려진 골프 코스도 즐비…일거삼득 휴양지

워싱턴 일원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가 꼽혔다. 윌리엄스버그는 미국 초기 식민지 역사를 간직한 민속촌으로 워싱턴에서 150마일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있어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쉽게 다녀올 수 있다. 가는 길도 쉽고 가족단위의 여행지로도 그만이다.

윌리엄스버그는 한국의 경주처럼 역사적인 도시다. 영국이 지배하던 18세기에 버지니아의 수도였다고 하니 꽤 오래된 도시다. 독립전쟁이후 영국인들이 철수하면서 피폐해졌다가 1930년대에 D 록펠러 주니어 등 재건위원회에 의해 복원됐다고 한다.

록펠러와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 재단은 당시 폐허가 된 집터들을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려냈고 유적지도 예전 그대로 재현했다. 초기 이민자들이 정착했다는 히스토릭 에어리어는 310만 스퀘어피트에 달하는데 한국의 민속촌처럼 당시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그 때의 생활 모습들을 재현하고 있다. 미국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가봐야 할 곳이다.

그렇다고 윌리엄스버그가 고리타분하게 역사공부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휴양지로도 손꼽힌다. 특히 골프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최적의 휴가지다. 골프도 즐기고 관광도 즐길 수 있는 일거삼득의 휴양지라 하겠다.

모처럼 휴가에 골프를 실컷 치고 싶은 이들은 더 이상 가족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윌리엄스버그는 자녀들에게도 충분히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까…. 골프를 즐기는 동안 가족들은 박물관이나 역사적 유물들을 관람하거나 리조트에 있는 워터 파크, 부시가든 등에서 놀면 된다.

초기 미국이민자들이 정착했다는 제임스 강변의 제임스타운을 돌아보거나, 역대 대통령들의 모습을 조각해 놓은 대통령 파크에서 대통령들을 만날 수도 있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200년 전통의 먹을거리들을 시식할 수 있는 고전적인 레스토랑을 찾아 별미를 즐기며 여행의 피로를 씻을 수도 있다.

▷윌리엄스버그= 윌리엄스버그는 시전체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둘러봐야 자세히 볼 수 있다.

윌리엄스버그 유래를 간단히 살펴보면 1633년경 제임스타운에 머무르던 영국 정착민들이 좀더 나은 생활환경과 담배농사를 위해 5마일정도 북서쪽으로 이주를 시작해 제임스타운보다는 약간 고지대인 이곳에 정착, 1722년 버지니아주 최초의 시가 됐다. 도시이름은 영국 윌리엄스 3세의 이름으로 명명. 1699~1779년까지 버지니아의 주도였으며, 영국 식민지의 정치·문화 중심지이자 미국 독립운동의 무대로서 다른 어떠한 도시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26년 D 록펠러의 원조로 식민지시대의 거리와 건물 등을 복원, 현재는 역사를 공부하려는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다.

중심가인 ‘듀크 오브 글루세스터’를 비롯, 사적지(Historical Area), 의사당 건물, 그리고 왕당파와 혁명론자들간에 격론이 벌어지곤 했던 선술집, 좌파학생들을 교육했던 윌리엄&메리 칼리지, 식민지시대의 법원, 재판장면 등 17~18세기 역사와 문화를 윌리엄스 시내 곳곳에서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제임스타운= 영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설한 최초의 정착지로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제임스타운에는 높은 울타리로 지어진 삼각지(Triangle) 형태의 정착촌이 눈길을 끈다. 정착초기 짐승이나 인디언들의 습격을 막기 위해 3곳의 꼭짓점에는 경계초소를 설치해 놓은 것. 울타리 밖으로는 당시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인디언 마을도 있다.

▷요크타운= 뉴폿뉴스 북쪽 요크강변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로 17세기에는 영국으로의 담배수출항구. 미국혁명의 전쟁 드라마가 펼쳐진 곳으로 유명하다. 1781년 콘월리스가 지휘하는 영국군이 뉴욕으로부터의 지원군 및 해상 함대의 원조를 기대하여 이곳으로 물러났을 때,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식민지군이 육상에서 이를 포위하고 해상에선 프랑스 함대가 출격, 영국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식민지군이 승리를 일궈낸 것. 이로 인해 식민지군이 승리를 확정하고 전쟁을 종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적지로 꼽힌다.

지금도 당시 전투에 사용됐던 참호나 성곽, 영국군이 항복했던 장소 등을 잘 보존해 놓아 생생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또 18세기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담배농장, 전통방식 가든을 비롯 전쟁관련 갤러리 등이 눈길을 끈다.

장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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