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12] 동양철관
'워크아웃→법정관리→파업' 서 노사 신뢰로 재기
노사 똘똘 뭉쳐 납기단축·기술개발…연매출 15%씩 성장에 흑자행진
'화불단행' 재앙은 늘 몰려다닌다고 했다. 수도.가스.송유관용 대형 강관 제조업체인 동양철관이 딱 그런 경우였다. 경영난에 몰려 주인이 바뀌었지만 바로 찾아온 외환위기에 다시 무너졌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살아나기 힘들겠다는 판단에 법정관리 대상이 됐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새 주인이 나섰다. 그러나 이번엔 노사 갈등이 번졌다. 5개월간의 장기 파업.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시장에선 모두들 "이젠 글렀다"고 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부활했다. 노사 갈등이 봉합된 뒤 지난해까지 매출은 쑥쑥 컸다.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를 내던 2008년에도 흑자를 기록했다. 동양철관 임직원들은 그 비결을 '신뢰 회복'이라고 표현했다. 극한 대립을 거쳐 되찾은 노사 간의 신뢰 이를 바탕으로 얻어낸 고객으로부터의 신뢰가 턴어라운드의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양철관은 1973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척이 세웠다. 나라가 하는 상수도.가스관 사업을 거의 도맡다시피 하며 호시절을 누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경쟁사도 하나 둘 생겨났다.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동양철관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다각화'를 새 성장전략으로 삼았다. 반도체 기업 알루미늄 새시 기업 등을 사들였다. 하지만 실패였다. 신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M&A 과정에서 은행 빚만 고슴도치 오이 걸머지듯 했다. 과도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할 상황에 몰렸다. 96년 결국 S그룹이 동양철관을 인수했다.
1년 남짓 지나 외환위기가 닥쳤다. 모 그룹인 S그룹 자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동양철관도 벗어날 수 없었다. 98년부터 2년여간 워크아웃을 진행했지만 '기업개선'은 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동양철관의 한 이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워크아웃 기업이라는 이유로 주문이 줄었다. 또 은행들이 자금 회수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투자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근근이 연명하면서 회사 분위기마저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았다."
워크아웃마저 실패였다. 2000년 법정관리가 결정됐다. 1년여가 흐른 2001년 말 이번엔 갑을상사그룹이 동양철관을 인수했다.
인수 초기인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서울시청 앞 광장을 붉은악마들이 붉게 수놓을 때 동양철관 직원들은 빨간 머리띠를 맸다. 새 주인과 처음 한 임금협상에서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회사는 더 어려워졌다. "저런 기업에 주문을 내면 제대로 된 물건을 제때 주겠느냐"는 인식이 퍼졌다.
워크아웃 때보다 더한 수주 가뭄에 시달렸다. 법정관리 중에도 3000원대를 오르내리던 주가는 액면가 500원에도 못 미치는 400원대로 내려앉았다. 시장에선 이 회사에 대해 기대를 접는 분위기였다. 변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룹 오너인 박유상 갑을상사 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공장을 찾아다니며 직원들을 일일이 만나 힘을 합치자고 설득했다. 그러기를 2~3개월. 오너의 노력과 갈수록 심해지는 위기에 직원들도 마음을 바꿨다. 파업을 접었고 이듬해엔 임금협상을 아예 회사에 일임했다. 임금을 깎든 더 주든 회사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내부의 신뢰는 이렇게 다졌다.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기회도 찾아왔다. 98년 일찌감치 수주해 뒀던 부산 남항대교 건설공사에 자재용 강관 240억원어치를 납품할 때가 된 것이다. 노조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먼저 "하루 24시간 2교대로 일하면서 납기를 확 줄이겠다"고 제안했다. "저렇게 노사 갈등이 심한 회사가 납기나 제대로 지키겠느냐"는 세간의 평을 말끔히 씻어버리겠다는 각오였다. 2003년 5월부터 2004년 8월까지 1년3개월 예정이었던 납기를 6개월 단축했다.
이렇게 분위기가 잡히자 박유상 부회장은 전문 경영인을 물색했다. 다른 강관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박종원 현 사장을 2004년 6월 영입했다. 박 사장은 경쟁업체보다 품질 우위를 누릴 신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폴리우레아'란 물질을 안에 입혀 물의 오염을 막아주고 수명도 대폭 늘린 대형 수도관 등을 개발했다. 여기에 남항대교를 통해 다시 쌓은 시장의 신뢰 철강.파이프 업계의 호황까지 겹쳤다.
파업이 극에 달했던 2002년 396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441억원으로 3.6배가 됐다. 2003년부터는 줄곧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2008년 말 무역의 날엔 '30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금융위기로 모두 허리띠를 졸라맸던 2008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 사이엔 350억원을 투자해 초대형 강관 제조설비를 설치했다. 수출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박 사장은 "대형 강관 안에 세라믹을 입혀 내구성과 친환경성을 더욱 높인 수도관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 관계는 이미 선순환으로 턴어라운드했다. 임금협상의 무교섭 타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회사는 매년 흑자에 따른 성과급으로 이를 보상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박종원 사장 "사무실서 고함지르며 시끄럽게 일하라"
직원들 사기 잃을까 걱정…회사 분위기 살리기 우선
“취임 후 가장 먼저 직원들에게 주문한 게 ‘고함 좀 질러라. 사무실을 시끄럽게 만들어라’는 거였습니다.”
2004년 6월 동양철관에 ‘구원투수’로 영입된 박종원(사진) 사장. 경쟁 업체인 휴스틸의 사장을 지낸 그는 처음 동양철관에 와 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두 가지를 걱정했다고 했다.
하나는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직원들의 사기였다. 동양철관은 초대형 가스·수도관 등을 100% 주문 생산하는 회사. ‘좋은 제품을 납기에 맞춰 댈 수 있다’는 고객의 믿음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기업이었다. 다행히 그가 오기 전, 부산 남항대교 건자재를 발주받아 밤을 새워 만들어 댄 덕에 고객들의 믿음이 살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대로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수년간 주인이 두 차례나 바뀌고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에 법정관리까지 거치며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얘기한 게 “사무실이 도떼기시장인 것처럼 시끄럽게 일하라”는 것이었다. 생산은 차질 없이 되고 있는지, 납품할 게 출발은 했는지 전화로 속삭이듯 확인하지 말고 소리를 질러대도록 했다. 일이 넘쳐 회사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게 적중한 것일까. 분위기가 살자 경영 실적이 살아났다. 매출은 연평균 15%씩 늘었고, 흑자 행진이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동양철관은 흑자를 냈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가입 권유를 받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한때 키코로 대박을 쳤다는 기업이 많았지요. 하지만 본업으로 돈을 버는 게 좋은 기업이 아닐까 합니다.”
연구개발(R&D)을 통한 신제품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경쟁 업체가 많아져 품질 차별화가 필요했다”는 게 박 사장의 설명. 각종 신제품으로 정부의 우수 제품 인증 등을 따냈다.
최근에는 자동 용접 로봇을 자체 개발했다. 대형 수도관 등을 저 혼자 용접해 이어 나가는 로봇이다. 박 사장은 “이를 활용해 강관 생산 뿐 아니라 시공 쪽으로도 사업을 넓히고, 나아가 수자원 종합관리회사로 탈바꿈할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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