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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마더스 데이' 카드

처음 유학을 와서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는 우리 명절이나 미국 명절 모두를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 명절은 마음에 닿지 않았고, 우리 명절은 쉴 수가 없어서 평일로 그냥 지나갔다.

인터넷으로 한국 땅의 명절 분위기가 전해져 와도, 명절 당일까지 학교 가서 수업하고 시험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크고 작은 ‘날’들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잊을 수 없는 날들이 가족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이었다. 그리고 ‘마더스 데이(Mother’s Day).‘
한국에서는 어버이 날이라 했는데, 미국에 오니 어머니, 아버지 날이 각각이었다.

초등학생 아들은 매년 5월 마더스 데이가 오면 학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왔다. 어린 것이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기특해서 아내는 마냥 기뻐했다. 학교에서 만들어서 가지고 온 것들은 손 바닥에 물감을 묻히고 종이에 찍어서 만든 판화부터 엄마에 대한 감사를 적은 시까지 다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아들에게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우리말로 카드를 써서 엄마에 대한 감사를 표하도록 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서울에서 마친 아들은 한글을 잊지 않고 잘 썼다. 집에서 늘 우리말로 대화를 하니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도, 아들은 꼭 한글로 카드를 써서 엄마 생일과 마더스 데이를 챙겼다.

그러던 아들이 지난 주 마더스 데이에는 영어로 카드를 썼다. 이제는 어린 아이도 아니고, 영어로 쓰고 싶다는 아들의 눈을 보니 말릴 수가 없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눈빛이었다. 자기가 모은 약간의 돈을 선물로 삼아 카드에 담은 아들이 아내에게 전했을 때 나는 아내의 눈이 잠시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아들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랑하는 엄마, 영어로 쓰니 훨씬 빨리 쓸 수 있고, 많은 말을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아마도 이 카드가 제가 집에서 엄마에게 드리는 마지막 마더스 데이 카드인 것 같네요. 이제 대학을 가서 집을 떠나 혼자 지내면, 저는 집이 얼마나 편했는지 알 것 같아요. 엄마가 얼마나 저를 위해 애쓰셨는지도요. 엄마, 감사합니다.”

늘 무슨 ’날‘이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써 온 아들이었지만, 이 날의 문장들은 아내의 마음에 더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들은 이번 여름에 집을 떠나기 전, 한 달 정도를 혼자 지내는 예행연습(?)을 하겠다고 한다. 혼자 빨래하고, 자기 방 청소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연습을 해보겠단다. 그래야 멀리 가서도 잘 할 거란다. 나는 솔직히 아들이 혼자 얼마나 깨끗하게 하고 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빨래도 귀찮아서 제대로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엄마가 그 동안 자기를 위해 애쓴 것이 각별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카드에 담는데에는 영어가 더 편했을 것이다.

아들의 카드를 읽는 아내의 눈은 벌써 가을을 본다. 아들이 떠난 가을을. 수도 없이 말썽을 일으켜 속을 썪인 아들이지만, 떠나고 난 후에는 얼마나 그리울 것인가? 식사는 혼자서 거르지 않고 잘 먹을 것인가? 아프면 어떡하나. 아내는 아들의 작은 손짓도 유심히 본다. 그래, 이것이 정말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마더스 데이 구나. 아내는 잠시 숨을 멈추고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마더스 데이 카드에 아들이 쓴 글이 이렇게 진하게 와닿았던 적도 없었다. 아들이 가는 길이 멀기 때문인지, 다들 가는 길을 가는 아들인데도, 아내는 맘이 편치 않다. 한 번도 가본 적없는 땅, 놀 거리와 유혹이 많은 대도시로 갈 아들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마더스 데이에 더욱 각별하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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