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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여성 임원의 리더십-1] 김혜경 풀무원건강생활 부사장

"내 삶의 에너지는 새로운 도전…주 100시간 일했다"

보이지 않는 차별을 뜻하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은 그만큼 견고하다. 그러나 영원히 깨지지 않는 유리도 없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유리 천장을 깨고 당당한 리더로 올라선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직장 생활에서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피하기보다 도전과 열정으로 정면 승부를 택했다. 치열한 승부의 현장에서 만난 여성 임원·CEO(최고경영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한국 최초 유기농 브랜드 '올가'…입사 3년 만에 CEO 맡아 성공
과로로 쓰러져 세 차례 대수술…오뚝이 처럼 일어나 일에 매진


"회사가 저를 뽑은 게 아니라 제가 이 회사를 고른 것입니다. 일단 관찰해 보고 마음에 들면 남겠습니다."

1993년 풀무원에 입사한 36세 경력사원 김혜경씨의 소감은 당차고 오만했다. 그녀의 패기와 도전정신을 높이 산 남승우 풀무원 사장은 3년 뒤 유기농 유통사업 진출이란 과제를 과감히 맡겼다. 유기농의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 그녀는 밤낮없이 현장을 누비며 한국 기업 최초의 유기농 브랜드 '올가'를 성공시켰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외부 투자를 유치해 '올가홀푸드'란 회사를 세우고 CEO를 맡았다. 이후에도 '내추럴하우스 오가닉(건강식품)' '풀비타(비타민)' '베이비밀(이유식)' 등 풀무원의 신규 사업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현재는 풀무원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풀무원건강생활의 부사장 겸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종합 식품그룹인 풀무원은 지난해 매출액 1조1204억원(연결 기준)을 기록하며 '1조 클럽'에 입성했다.

김혜경(53) 부사장은 "남들이 두려워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으면 오히려 힘이 솟는다. 무슨 일을 맡든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인가 해서 가치 있는 일인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으로서 매출이나 이윤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가치는 '건강한 사회 만들기'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은퇴 후 체력이 허락한다면 환경 관련 단체나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부사장은 충북 괴산의 풀무원 연수원 '로하스아카데미' 본부장도 맡아 서울과 괴산을 수시로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36세에 경력사원으로 풀무원 입사

-회사 생활을 남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

"30대 중반의 어중간한 나이였지만 일단 결심이 서면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는 기질이 발동했다. 캐나다에서 돌아와 전에 근무하던 학교로 복직도 가능했지만 공백기간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풀무원에서 경력사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공(식품영양학)이나 관심 분야도 맞아 지원했다. 집은 대전인데 입사 1년쯤 지나자 서울로 발령이 났다. KTX도 없던 시절이라 서울에서 대전을 매일 차를 몰고 출퇴근했다. 회사에서 집에 오면 오후 10~11시였지만 다음 날 오전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을 나섰다."

-유기농 유통사업은 어떻게 진출하게 됐나.

"96년 어느 날 남승우 사장께서 불렀다. 난데없이 유기농 유통사업을 해보라기에 사흘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식품 제조회사가 유통업에 진출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해보겠습니다'고 답했다. 당시 나에겐 두 가지 꿈이 있었다. 첫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탁에도 유기농 야채를 올리는 것이었다. 둘째는 항생제를 없애고 그 자리를 비타민.미네랄 등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이건 시간이 흐른 뒤 풀비타 사업으로 가시화됐다."

-90년대 중반이면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기농 사업이 쉽지 않았을텐데.

"책으로 쓰라면 몇 권이 나올 거다. 시민단체나 사단법인이 아닌 기업 차원의 유기농 유통은 처음이었다. '유기농이 왜 무농약보다 비싸냐' 등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생산 관리에서 홍보까지 전 과정을 다 책임져야만 했다. 생산자.소비자가 있는 곳이면 강원도 산골이나 제주도나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지금처럼 컴퓨터 장비가 발달한 것도 아니어서 화이트보드를 차에 싣고 전국 매장을 돌아다니며 밤늦게까지 직원 교육을 시켰다. 집에는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오다시피 했다. 주 100시간을 넘게 일했다. 나중에 차량 계기판을 보니 연간 주행거리가 10만㎞를 넘었더라."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캐나다에 살았던 경험으로 우리나라도 소득이 높아질수록 유기농이 대세가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사람들이 건강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건강한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

-다른 사람 건강 위하다가 자신의 건강을 해친 것 아닌가.

"무리하다 건강을 해친 탓에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잦았다. 무슨 일이나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다. 대수술을 세 번이나 받고 살아났다. 2003년 세 번째 수술을 받고 나선 한동안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남승우 사장이 주주총회를 연기해 가면서 복귀를 기다려줬다. 하지만 계속 회복이 늦어져 2004년 9월 건강생활부문으로 옮겼다."

-남승우 사장이 풀무원의 '엔트러프러너(Entrepreneur.기업가)'라고 평가한다던데.

"복귀 후 처음엔 쉬라더니 일을 잔뜩 주더라(웃음). 어차피 내 성격이 가만히 앉아있질 못한다. 2005년 내추럴하우스 오가닉이란 프랜차이즈 사업과 굿다이어트란 인터넷 사업 정리를 맡았다. 한두 달 사업 구조를 들여다보니 '악' 소리가 났다.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을 관리하는 정보기술(IT) 시스템이 핵심인데 그게 제대로 안 돼 있었다. 할 수 없이 전공도 아닌 IT 시스템 구축에 전력을 기울였다. 아무리 뛰어난 프로그래머라도 사업 구조를 잘 모를 수 있다. 그걸 완성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었다. 참 재미있었다."

-지난해부터는 '로하스 아카데미'도 맡았는데 뭐하는 곳인가.

"자연을 체험하는 곳이다. 일반적인 기업 연수원은 지식이나 가치를 주입하려고 한다. 우리는 숲속 아늑한 곳에서 쉬면서 자신을 비우고 자연을 담아가도록 권한다. 그게 풀무원의 정신이다. 명상.요가와 숲길 걷기 영농 체험 등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일단 들어오면 휴대전화도 맡기고 업무와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했다."

-올해 초에 이유식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다. 어릴 때부터 건강한 먹을거리를 줘야 평생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시간도 없고 정보도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가 아기의 월령에 맞게 여러 가지 메뉴의 이유식을 만들어 냉장 상태로 배달하는 것이다. 초기 반응은 매우 좋은데 가격이 비싸 부담스럽다는 분이 많다. 현재 24~36개월 아기를 위한 음식도 준비 중이다."

WHO?

1957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캐나다로 건너가 아르바이트 건강 상담사로 일했다. 당시 캐나다의 선진화된 유기농·건강식품 시장과 시스템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 미래 사업의 비전을 읽었다고 한다. 귀구 후 93년 풀무원에 입사해 신규 사업 진출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97년 설립한 유기농 농산물 유통업체 올가홀푸드에서 10년간 대표이사를 맡았다. 회사 생활 틈틈이 한양대 대학원에서 임상영양학을 공부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올 초에는 조리를 마친 상태에서 냉장 배달하는 이유식 브랜드 ‘베이비밀’도 출시했다. 현재는 사내 연수원 ‘로하스 아카데미’ 본부장으로 친환경 청소년 수련원 건립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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