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건 대법관 지명자와 인준전망…오바마는 이념보다 실용을 택했다, 발끈 공화당 "천천히 검증 거칠 것"

50세의 여성 법조인인 케이건 차관은 판사 경력이 없는 것이 흠으로 지적되지만 행정부 사정을 잘 아는 인물로 통한다. 대법관에 내부사람을 기용해 향후 국정 운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다. 케이건 지명자의 면면과 인준 전망을 살펴보자.

# 입법.행정.사법 두루 거쳐

케이건 지명자는 상원 인준을 통과할 경우 미국 역사상 112번째 여성으로는 네 번째 대법관으로 기록된다. 현직 대법관들 중에서는 루스 긴스버그와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에 이어 세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케이건 지명자에게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학장을 지낸 데 이어 법무부 공판담당 차관에 발탁됐다. 나이에 비해 능력을 일찍 인정 받았다는 평이다.

인준을 통과하면 현직 대법관들 중 최연소 대법관이 된다. 은퇴를 선언한 스티븐스 대법관과는 무려 40세나 차이가 난다. 지난해 3월 현직인 차관에 부임했으므로 차관 1년 만에 대법관으로 올라가는 초고속 승진으로 기록된다.

케이건 지명자는 뉴욕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서굿 마셜 대법관의 서기로 활동했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시카고 법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의회.백악관 등 입법.행정.사법 3부를 두루 거친 경험과 풍부한 법률지식 등으로 일찌감치 후보물망에 올랐다.

중도 성향의 진보인사…판사 경험없어 논란
인준땐 미 역사상 첫 개신교 없는 대법원으로

그는 지난해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 당시에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판사 경험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케이건 지명자의 경력은 현직 대법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출신 학교부터 그렇다. 케이건 지명자가 대법관이 되면 대법원은 루스 긴스버그 대법관을 제외하고는 하버드나 예일 로스쿨 출신으로 채워진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은퇴를 앞둔 스티븐스 대법관은 9명의 현직 대법관들 중 유일한 개신교 신자이고 케이건 지명자는 유대교 신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스티븐스 대법관의 퇴임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관 가운데 개신교 신자가 1명도 없는 상황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히스패닉인 소토마요르 대법관 흑인인 토머스 클레런스 대법관 등 6명은 가톨릭 신자이며 루스 긴스버그 대법관과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등 2명은 유대교 신자다.

# 판사 경력 없어 논란 예상

케이건 지명자의 경력과 관련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판사 경험이 없다는 점. 케이건 지명자는 지난 1999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연방항소법원 판사에 지명됐으나 공화당의 인준 거부로 정작 법복을 입지는 못했다.

판사 출신이 아닌 법조인이 대법관에 지명된 것은 케이건이 38년 만에 처음이다. 실제 이번 지명과정에서도 최종 후보물망에 오른 인물들은 케이건 차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방판사들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대법원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있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벌써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에드워드 웰런 윤리 및 공공정책센터 소장은 케이건 지명자의 경력에 대해 대법관에 요구되는 경력에 크게 못 미친다고 못박았다. 콜로라도 대학의 폴 캄포스 교수도 최근 한 언론 기고문에서 케이건 지명자를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지명됐다 자질 시비로 도중에 하차한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고문에 비유하며 자질문제를 거론했다.

이에 반해 지지자들은 케이건 지명자의 자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박한 법률지식에다 ‘10번째 대법관’으로 불리는 공판담당 차관직을 훌륭히 수행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 시절 법무부 부차관을 지낸 월터 델린저는 케이건 지명자에 대해 최상급 법조인이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지지자들은 케이건 지명자가 사법부의 오랜 관행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인물이라며 적극 반기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인준 청문회에서 핵심 사안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한가지 케이건 지명자 쪽에 부담스런 점은 여론이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판사 경험이 대법관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답했다.

# 이념 색채 옅은 진보인사

케이건 지명자는 중도성향의 진보인사로 분류된다. 이념색채가 짙지 않고 반대이념을 가진 인사들과도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케이건 차관의 지명을 놓고 오바마 대통령이 이념보다는 실용을 택했다고 평했다. 케이건 지명자는 하버드 로스쿨 학장 재직시절 보수성향의 교수들을 적극 기용,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를 아울렀다는 평판을 받았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법무부 차관을 지낸 티오도르 올슨은 케이건 지명자를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는 법조인으로 평했다.

그럼에도 이 문제 역시 자질시비와 함께 논란이 될 전망이다. 공화당을 비롯해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케이건 지명소식이 나오기 무섭게 반대입장을 내놓았다. 공화당의 제프 세션 의원은 케이건 지명 발표가 나온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케이건 지명자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보수진영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동성애에 대한 케이건 지명자의 입장. 케이건 지명자는 하버드 로스쿨 학장시절 동성애 사실을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국방부의 정책에 강하게 반대, 대학 캠퍼스 내 모병활동에 반대했다. 성적 취향을 이유로 차별을 금하는 대학의 정책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케이건 지명자는 캠퍼스 내 모병활동을 금하는 한편 동료 교수들과 함께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대학들이 캠퍼스 내 모병활동을 허용하도록 한 법에 대한 위헌여부를 가리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국 이 법은 대법원에서 합헌판결을 받았다. 보수진영의 반발은 상당 부분 예견된 것이었다. 대법관의 성향을 둘러싼 민주와 공화간 갈등은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대법원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본격 불거졌다. 이후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서로의 입장을 비난하는 등 양측간 갈등은 더욱 증폭돼왔다. 공화당이 스티븐스 대법관의 은퇴선언이 나오자마자 온건성향의 인사를 지명할 것을 요구하며 오바마 대통령을 압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화당은 이번 지명과정에서도 지지후보를 표시하는 등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공화당은 최종 선정과정에서 경합을 벌인 후보들 중 가장 보수성향이 강한 메릭 갈랜드 연방항소법원판사를 지지했다. 따라서 공화당으로서는 이번 지명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 향후 국정운영 염두 둔 인선

오바마 대통령은 선정과정에서 10여 명의 후보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헤럴드 고 국무부 법률고문도 후보물망에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정결과를 발표 하루 전에 참모들에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명과정 초반부터 케이건 지명자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10명 중 케이건 지명자를 포함한 4명을 최종 후보 리스트에 올려놓고 면접 등 마지막 선정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는 바이든 부통령도 참여했다. 4명의 최종 후보들은 케이건 지명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방항소법원 판사들이었다.

케이건 지명자가 판사 후보들을 제치고 최종 낙점된 데는 행정부 사정에 밝다는 점이 주효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건 지명자는 오바마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 내부사람으로 통한다. 행정부 내 사정과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안다는 말이다.

군대 동성애 '공개금지' 반대전력들어 보수진영 반발
로스쿨 학장 때 '보수성향 교수 기용' 진보진영 갸웃

또 행정부 내 인맥도 두터운 편이다. 케이건 지명자는 조셉 바이든 부통령의 상원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다. 법무부 차관에 발탁된 이후에는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는 것이 대통령 참모들의 말이다. 이 때문에 케이건 지명자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인선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보수성향으로 기울고 있는 대법원에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심어놓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이 이번 인사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향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의료보험 개혁과 금융개혁 등 핵심 국정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대법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판단이다.

#인준 논란 불구 통과 전망

백악관과 민주당은 케이건 지명자가 인준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공화당은 인준 청문회를 통해 케이건 지명자의 오점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공화당의 핵심 전략은 케이건 지명자가 판사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킨다는 것. 특히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 당시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판사경력을 높인 산 점을 역이용한다는 전략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오랜 판사경력을 지명이유로 강조한 바 있다. 민주당은 겉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방어전략 마련에 부심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케이건 지명자가 인준을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전망에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케이건 지명자의 대법원 입성이 대법원의 현재 이념구도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퇴임을 앞둔 스티븐스 대법관이 대법원 내 진보의견을 대표했다는 점에서 진보진영 내 물갈이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케이건 지명자의 과거 경력에서도 판사 경험을 제외하고는 두드러진 문제가 없다는 점도 인준 통과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다. 이 부분에서는 판사 경험이 없다는 점이 케이건 지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낙태문제와 총기소지권리 등에 대한 과거 판결은 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이슈들이다. 숱한 후보들이 인준 청문회에서 이들 문제로 곤욕을 치르곤 한다.

민주당은 오는 10월 대법원의 새 회기가 시작되기 전에 인준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일정표가 가능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인준 청문회 쟁점들
▷ 하버드 로스쿨 교수 채용

진보진영에서 문제를 삼고 있는 부분이다. 케이건 지명자는 하버드 로스쿨 학장시절 보수성향의 교수들을 적극 기용 진보진영의 반발을 샀다. 특히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케이건 지명자가 교수채용과정에서 소수계와 여성들을 차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판사 경험

케이건 지명자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대부분 대법관들이 판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비교된다. 판사 경험이 없는 인사가 대법관에 지명된 것은 38년 만에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케이건 지명자의 정신적 멘토로 알려진 서굿 마셜 대법관도 케이건 지명자와 같이 판사를 거치지 않고 법무부 차관에서 대법관이 된 케이스다.

▷ 군대 내 동성애

케이건 지명자는 하버드 로스쿨 학장시절 동성애 사실을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국방부의 정책에 강하게 반대 캠퍼스 내 모병활동을 금하는 한편 동료 교수들과 함께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대학들이 캠퍼스 내 모병활동을 허용하도록 한 법에 대한 위헌여부를 가리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국 이 법은 대법원에서 합헌판결을 받았다.

■주요 약력

1960년 뉴욕시 출생

1981년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83년 옥스포드 대학 석사학위 취득

1986년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1987~88년 서굿 마셜 대법관 서기

1989~91년 민간 변호사 활동

1991~95년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

1995~99년 빌 클린턴 대통령 법률고문

1999~2009년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2003년 학장 취임)

2009년 3월~현재 법무부 공판담당 차관

워싱턴=최 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