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around 위기 딛고 선 기업들-9] 교보생명
"교보 파산"…충격요법으로 변화·혁신 이끌어
더 이상 진통제·항생제론 안 돼 일선 영업조직서 한때 반발
이익 중심으로 체질 개선 군살 빼니 매년 3000억 순이익
2000년 4월 충남 천안시 교보생명 연수원인 계성원. 대강당을 가득 메운 전국 지원단장과 간부사원 500명은 갑자기 스피커에서 나오는 긴급 뉴스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신창재 회장의 연설은 중단됐다. 장내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뉴스는 이어졌다. “금감원장은 교보생명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어 퇴출을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전국 지점에는 가입자들의 문의와 항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강당 안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윤수홍 당시 강릉지원단장은 "입 안이 바싹 타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뉴스 실제 상황이 아니었다. 곧 밝혀지긴 했지만 임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이는 극비리에 준비된 가상의 영상물이었다. 신창재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외주업체가 비밀리에 제작했다. 가상 뉴스가 끝난 뒤 신 회장이 말했다.
"변하지 않으면 교보생명은 정말로 내일 망할지도 모릅니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한다는 대장정의 신호탄은 이렇게 쏘아 올려졌다.
교보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 때 2조4000억원의 자산 손실을 떠안았다. 대우.아시아자동차 등 대출을 해준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3월에는 주식시장 침체까지 겹쳐 254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교보생명도 정부의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높아졌다.
신 회장은 2000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보험업계의 문제점을 해부하듯이 뜯어봤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답게 그는 회사의 근육부터 혈관까지 샅샅이 분석했다. 그가 진단한 업계의 고질병은 외형 경쟁이었다. 이익이 나건 말건 몸집을 불려야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관행에 빠져 부실 판매 대충대충 판매가 비일비재했다. 한꺼번에 왕창 계약을 했다가 한 번에 해약하는 악순환도 되풀이했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병의 뿌리를 완전히 없애는 근원치료다."
종전에는 이상이 보이면 진통제나 항생제를 투여해 잠시 통증을 완화하거나 병의 진척을 막았다. 하지만 이런 치료로는 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는 회사의 체질을 외형보다는 이익 중심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문제는 일선 조직의 반발이었다. "보험 영업을 모르는 의사 출신 회장이 회사를 망가뜨린다"는 반발이 컸다. 그러나 그는 꺾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직원들을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추진력을 보였다. '이익중심 영업정착 실무조사단'을 만들어 조사에 들어갔다. 인사상의 어떤 불이익도 없다고 약속하면서 부실 조사를 한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보험 13회차 유지율은 60%에 불과했다. 보험에 가입한 뒤 1년 지나면 10중 4명이 이탈한다는 뜻이다. 허위계약도 있었고 고객의 서명을 받지 않은 계약도 나왔다.
결국 허울 뿐인 재무설계사를 정리했다. 한때 5만 명이나 됐던 재무설계사를 2만 명으로 정예화했다. 저축성 보험을 줄이고 보장성 장기보험 위주로 영업전략을 다시 짰다. 보험사 경영의 또 다른 축인 자산운용은 외부 운용사에 위탁했다. "떡은 떡집에 맡겨야 한다"는 게 신 회장의 지론이었다.
회사에 다시 신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단 한 개의 보험상품만 팔더라도 완벽하게 철저하게 했다. 고객들이 다시 교보생명을 찾기 시작했다. 13회차 보험유지율은 2005년부터 80%대로 뛰어올랐다. 당기순이익도 그해에 2319억원을 기록했다.
자기자본도 2005년에 1조4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3조5414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3월 결산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든 금융사가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도 교보만은 291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국내 생명보험업계에서 가장 많은 액수다.
이런 성과는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 재보험콘퍼런스에서 교보생명은 '아시아 최고 생명보험사' 상을 받았다. 2005년 발행했던 2500억원어치의 후순위채권도 지난 2일 모두 상환했다.
신 회장은 대표이사로 취임한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려고 했던 시기였죠."
그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교보생명 직원들이다. "별 경험이 없는 새내기 경영자를 믿고 힘써 주었던 직원들이 있었기에 회사의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임직원 간의 유대와 탄탄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교보생명은 2015년까지 총자산 100조원 당기순이익 1조원이라는 중장기 목표를 내걸었다.
■애널리스트가 본 교보생명
순이익 압도적 한국 1위, 자본총계 규모는 아직 작아…상장 통해 자본 늘려야
외형으로 볼 때 교보생명은 삼성생명에 이어 대한생명과 2위 자리를 다투는 보험사다. 연간 보험료 수입이 그렇다. 3월 말에 결산을 하는 이들 3개사의 2008년 4월 1일~2009년 3월 31일 보험료 수익은 삼성생명이 19조8300억원, 대한생명 10조5400억원, 교보생명 9조8900억원이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교보생명이 압도적인 1위였다. 2008년 4월~2009년 3월 교보생명의 순익은 2916억원으로 삼성생명(1130억원)의 두 배 반이며, 대한생명(830억원)의 세 배 반이다. ‘알찬’ 보험사인 것이다.
최고경영자(CEO)가 의사 출신(서울대 의대 교수)이라서일까. 2000년 신창재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뒤 체격(외형)보다는 건강과 체력(수익성)을 추구하는 경영을 펼친 결과가 지금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비단 교보생명만 아니라 삼성·대한생명에도 적용되는 얘기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외형과 내실이 함께 좋아질 것으로 본다. 이들이 예전에 유치했던 고금리 보험들이 만기 해지되면서 지출 부담이 줄어 수익성이 오르고 있다.
외형은 요즘 바람을 타기 시작한 퇴직연금과 함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은 오랜 기간 맡겨야 하는 것이어서, 아무래도 안정성이 높은 큰 회사를 고객들이 선호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퇴직 연금은 한 번 맡길 곳을 선택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 성격이 있어 빅3 보험사의 장기 수입원이 될 전망이다.
퇴직 연금 시장에서 교보생명 나름의 장점도 있다. 특유의 내실 경영은 안정성이 높은 회사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교보생명은 또 법인 영업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선전할 기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교보생명이 삼성·대한생명에 비해 부족한 점은 자본총계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자본총계란 자본금에 그간의 이익에서 생긴 잉여금 등을 더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자본총계가 지난해 말 시점으로 10조8500억원이고, 이번에 상장한 대한생명은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교보생명은 3조5400억원 정도다.
자본총계가 적으면 생보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급여력 비율’이란 수치가 아무래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과 비슷한 입장이 된다.
이걸 해소할 가장 유력한 방법은 상장을 위한 공모를 통해 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대한생명이 상장을 했고, 삼성생명도 상장을 앞둔 마당이다. 과연 교보생명은 어떤 선택을 할까.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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