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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진의 교육 사랑방] 좋은 아빠 되기 (4)

래니어중 카운슬러

아들을 키워 보신 분들은 동의하시겠지만 딸들에 비해 아들을 키우는 것은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딸들 보다 자잘한 부분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던지 여러모에 있어 덜 까다롭다던지 하는 편한 점도 있지만, 무뚝뚝하고 자기 의사 표현을 쉽게 하지 않는다던지 하는 모습은 자식이더라도 그리 예쁘게 보이지만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일단 사춘기에 접어 들면 입을 다물기 시작하고, 뭘 물어 봐도 속 시원하게 대답을 하는 법이 없고, 집에 들어오면 하숙생이나 된 양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나오질 않는다며 상담을 해 오시는 부모님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뭐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얘기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집에만 들어 오면 입을 다물기 시작합니다.

이럴 경우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그냥 놓아 두거나 아니면 답답하다며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하면 아예 아이를 놓쳐 버리는 수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아이들 마음 속에 부모의 뜻을 이해하고 수긍하려는 마음보다는 부모의 모든 점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는 부모와 어딘가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것 조차 부끄러워하고 꺼려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많은 한인 남학생들의 경우 엄마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 거부감을 마음 속에 쌓아 두고 사는 아이들이 많은데, 대게 아이들의 불만은 ‘아빠가 자기에 대해 관심이 없다’ ‘우리 아빠는 집에서는 무섭기만 하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 한다. 위선적이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빠는 맨날 야단만 치고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빠는 항상 일방적이어서 내 말은 한번도 들어 주지 않고 맨날 자기만 옳다고 한다’ ‘아빠는 자기 잘못은 모르고 모든 걸 다 내 잘못이라고 몰아 세운다’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아빠들의 진심이야 어찌되었던 현실 속에 우리 아이들은 이런 불만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이런 불만을 가슴 속에 가득 안고 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입을 열어 자신에 속내를 터 놓고 우리가 원하는 만큼 자유로운 대화를 한다던지, 퇴근하고 들어 오는 우리를 웃는 얼굴로 맞아 준다던지 하는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는데, 비교적 친구처럼 지내온 중학생 나이 제 아들 녀석에게도 언젠가부터 불쑥 사춘기가 찾아 왔습니다. 부쩍 말이 줄어 들고 얼굴 빛이 예전처럼 밝지가 않습니다. 평소에 살갑고 장난끼 많던 아이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내심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하기 시작하던 몇일 전, 아내로부터 영인이가 아빠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며 서운함을 토로하더라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들과는 달리 자기 감정 표현이 드물고, 항상 무난하기만 해 보이던 사내 녀석의 마음 속에도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고,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원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제가 정작 제 아들아이에게는 ‘아빠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라는 느낌을 심어 주었다고 생각하니 적잖이 당황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럴 땐 한시라도 지체하면 안 됩니다. 바로 다음 날 저는 아침에 등교하려는 영인이에게 귓속말로 “오늘 저녁에 아빠하고 둘이 boys night out 하자!” 영문을 모르는 영인이는 ‘오케이’하고 문을 나섭니다. 그날 저녁 저는 퇴근 후 영인이가 좋아하는 타코벨에 가서 타코를 잔뜩 쌓아 놓고 모처럼 만에 아들과의 저녁 데이트를 합니다. 이때는 다른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

그저 맛있게 타코를 아이와 나누 먹으며, 스포츠 얘기, 학교 얘기, 재미있는 영화 얘기 이런 얘기들로 최대한 부드럽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슬쩍 본론을 시작합니다. “영인아. 아빠가 너한테 혹시라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서운했니? 아빠가 바쁘다 보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빠가 너였어도 섭섭할 때가 많았을 것 같아.

사실 아빠는 말이야. 누가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게 좋은 아빠가 되는건지 잘 모를때가 많아.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고 너에 눈에 그렇게 좋은 아빠로 비쳐지지 못할 때도 많을 거야. 그래도 아빠가 한가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빠는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거야. 그리고 누가 뭐래도 아빠는 너를 정말 사랑한다는거야. 혹시 아빠가 너 마음에 서운하게 했다면 미안해. 아빠가 사과할께.” 말 없이 아빠의 말을 듣고 있는 영인이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돌기 시작합니다.

자식한테 부모가 뭘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20년 가까이 청소년 상담을 해 오면서 보고 느낀 결론이 한가지 있습니다. 많은 우리 한인 자녀들에게 ‘OO 야! 아빠가 미안하다’ 는 아빠의 진정 어린 말 한마디가 우리 아빠들의 부족함으로 인해 자식들 마음에 안겨준 상처, 아픔을 씻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좋은 약이 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 의외로 우리 자녀들에게 ‘미안하다’ 사과 한마디로 시작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의: wjlmat@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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