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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인 미술가들-83] 김명희…칠판에 ‘시간의 흐름’ 켜켜이 담아내

분단민족·고려인 등 역사의 흔적 찾는 작품 많아

1949년에 태어난 여류화가 김명희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일본과 영국에서 보냈다. 귀국 후 이화여고를 거쳐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2년 독일문화원에서의 첫 개인전을 가졌고, 이화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현재의 남편이자 화가인 김차섭을 만났다.

1975년 미국으로 건너 온 김명희는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과정을 수학하고 이듬해인 1976년 소호에 정착했다. 그 동안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고, 현재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환기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김씨는 학교에서 쓰던 칠판 위에 오일과 파스텔로 인물과 정물 등 구상성 강한 이미지를 그려내는데 일상의 소소한 경험으로부터 멀리 시베리아 벌판을 무대로 무거운 역사의 기억까지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성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뜨거운 추상 계열의 작품을 그리면서 회화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문제의식, 또 여기에 사회와 문화의 맥락을 짚는 발언까지 포함하고 있다.

김씨가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중반 모국의 강원도 내평리에 있는 문을 닫은 학교에 작업장을 만들어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경계인 작가로서의 출발을 하면서부터.

“한국을 떠난 지 17년만에 한국에 강원도 내평리의 한 폐교에 작업실을 마련했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공간을 다른 아이들로 채웁니다. 칠판은 그 존재론적 조건이 끊임없는 쓰기와 지우기의 반복입니다. 칠판이 담아 내는 기억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켜켜이 흔적으로 자리하고 그 위에 쓰이는 이야기는 남아있는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칠판화가로서의 김씨의 진수는 이 시기에 나타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세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칠판화가 심화된 것이다.

내평리 작업실에서 그린 그의 작품 작품 ‘내가 결석한 소풍날’은 음악 학습용 칠판 위에 그려진 노란 단풍잎 속에 아이들의 소풍을 담고 있는 것으로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아련히 드러내고 있다.

김씨는 “어린 시절 자주 놓쳤던 소풍에 대한 안타까움을 영상으로 대신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김씨는 이러한 어린이들에 대한 감성적인 그림들과 함께 사회적인 문제의식도 그림에 담아냈다. 김명희가 제기하는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과 사회적 맥락의 발언은 ‘북서에서 온 아이’와 ‘남동에서 온 아이’에서도 드러난다.

마치 일란성 쌍생아를 보는 듯한 이 두 아이(실제로 동일한 한 아이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확대하고 좌우를 바꾼 것)는 푸른 색조의 옷과 붉은 색조의 옷이라는 구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한 쌍의 아이그림은 김씨의 다른 작품 ‘보트 피플’에 등장하는 한 쌍의 한반도 지도와 함께 보게 되면 분단민족으로서 우리의 아픔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여기에 그의 예술세계에는 다른 작가들에게서 쉽게 보기 어려운 역사성이 포함돼 있다. 김씨는 1997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 깊숙이 한국 강제 이주민의 삶을 추적한다.

‘강요된 유전’‘사마라칸트의 황금 복숭아’‘혼혈’‘추방’ 등의 작품은 모두 구 소련 시절의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통치할 목적으로 1937년에 17만 명의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던 역사의 흔적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감성적 구상화에 역사성이 담기면서 그의 그림에 강한 에너지가 들어간 대표작들이다.

김씨는 이러한 과정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걸어왔고 또 앞으로 걸어갈 예술가로서의 길을 찾고 있다.

“내평리의 작업실에서 시베리아를 생각하고, 뉴욕의 공기를 마시면서도 경주에 있는 어느 봉분을 더듬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 삶. 이것은 집을 갖지 못한 자의 소외가 아니며, 집을 떠난 자의 그리움도 아닙니다. 그림을 통해 세계를 집으로 삼아 ‘그 어디나 집’인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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