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이노패스트 15'-15] 아바코
LCD·태양전지 장비업체…세계 톱10 꿈
"LCD에 막 입히는 장비 한국산화
고객사 투자 따라 실적 오락가락
새 먹거리로 태양전지 장비 개발
"성장 하려면 인재밖에 없어"
과장급 이상에 60만주 스톡옵션"
기술에 성공하고 판매에 좌절했다. 액정디스플레이(LCD) 생산장비 메이커 아바코가 2006년 하반기 처했던 상황이 그랬다.
대구에 본사를 둔 아바코는 2000년 1월 대명ENG의 진공사업 부문이 분리해 설립됐다. 회사 이름은 첨단 진공장비를 만드는 회사라는 뜻의 영어 머리글자(Advanced VAcuum & Clean equipment Optimizer)를 따서 만들었다. 초기엔 LCD 생산용 물류 장비를 주로 만들었다. 한국 업체의 LCD 생산이 증가하고 장비 주문이 늘면서 매출도 빠르게 늘었다. 창립 4년 만인 2004년엔 매출액 500억원을 달성했다. 2005년엔 코스닥 시장에도 상장했다.
아바코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핵심 장비인 스퍼터 개발에 착수했다. 스퍼터는 대형 유리기판에 얇은 막을 입히는 장치다. 높이 4m.길이 20m나 되며 대당 가격이 90억원을 넘는다. LCD 생산 라인에선 꼭 필요한 장비지만 한국 업체들은 2005년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이를 전량 수입했다.
45명의 직원이 3년 동안 매달려 개발한 끝에 2006년 한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성공은 곧 좌절의 시작이었다. 한국산 스퍼터 1호기를 2006년 8월 납품했지만 그때부터 내리막이었다. 주고객인 LG디스플레이가 5.5세대 LCD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를 취소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매출이 줄었고 개발 비용이 급증하면서 그해 4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2007년엔 매출액이 2005년의 반 토막이 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LCD 생산업체의 설비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일감을 딸 수 없는 취약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성득기(55) 사장이 대표이사로 부임한 게 바로 이때였다. 한양대 공대를 나와 LG전자에서 엔지니어로 20여 년간 근무했던 그는 2000년 아바코의 창립 멤버로 초대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3년 관계회사인 아바텍(글래스 코팅회사) 대표로 옮겨 근무하다 아바코가 위기를 맞자 구원투수로 나섰다. 성 사장은 취임 후 직원을 모아 놓고 "회사가 많이 성장했고 기술도 축적했지만 전리품이 없다"며 "열심히 일했지만 나눠줄 것은 없는 상처 뿐인 영광"이라고 분발을 촉구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2005년 240명이던 직원을 2007년엔 130명으로 줄였다. 연구개발과 설계 등 핵심 역량을 최대한 보존하되 나머지 분야는 아웃소싱을 하기로 했다.
"함께 일한 직원을 내보내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살기 위해선 최대한 가벼운 몸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지요."
2008년엔 LG디스플레이가 LCD 생산을 위한 투자를 늘리면서 회사 매출도 회복됐다. 2007년 257억원이었던 매출액이 2008년엔 90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09년엔 매출액 1200억원을 달성했다. 2008년 5월엔 LG디스플레이가 아바코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2대 주주(19.9%)가 됐다. 성 사장은 "투자를 통해 LG디스플레이와의 협력과 유대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사의 문제점은 여전했다. 스퍼터의 개발과 판매에서 드러났듯이 LCD 경기의 흐름에 회사의 운명이 왔다갔다한다는 것이다. 경영 안정성이 약하다는 뜻이다. 이게 성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겐 큰 고민거리였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다. 성 사장은 기존 LCD 장비 제작 경험을 살려 박막형 태양전지 장비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LCD와 박막형 태양전지는 제품의 성격은 다르지만 얇은 막을 입히는 제조 공정은 같다. 아바코는 LCD용 스퍼터를 한국산화한 경험을 살려 2007년 태양전지 생산 공정에서 얇은 막을 입히는 스퍼터를 개발했다. 지난해 10월엔 중국 기업인 티안웨이에 연구개발용 박막형 태양전지 스퍼터를 납품했다. 성 사장은 박막형 태양전지 스퍼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등에서 대량 투자가 일어난다면 본격적인 장비 수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나리오를 따라 그가 꿈꾸는 목표는 세계 10대 장비 회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LCD와 반도체 생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장비 분야는 아직 뒤떨어져 있습니다. 이를 한국산화하지 않으면 한국 생산업체들이 해외 장비업체에 끌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아직은 미국이나 일본 업체보다 규모는 작다. 하지만 아바코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다. 성 사장은 원가 경쟁력과 신속한 서비스를 강조한다. 예컨대 아바코는 LG디스플레이 공장이 있는 파주에 3공장을 세워 LCD 생산 현장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직원들을 바로 내보내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 업체와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우리는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회사가 계속 성장하려면 역시 인재를 확보하고 키워야 한다. 성 사장은 "대기업은 조직력으로 활동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직원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큰 장벽이 있다. 지방에 본사를 둔 탓에 필요한 인재를 바로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 사장은 직원들을 키우는 데 공을 많이 들인다. 신입사원을 채용해 회사 문화에 맞게 가꿔 가자는 것이다. 아바코 전체 직원의 60%가 5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보상은 철저한 편이다. 현재 300명의 직원 중 과장급 이상 90명에게 총 60만 주의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부여했다. 성 사장은 "일한 만큼 보상하고 직원들이 자부심과 재미를 느끼는 직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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