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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이노패스트 15'-14] 동국S&C

폐업 위기서 윈드타워(풍력발전 구조물)로 8년만에 세계 'NO 1'

‘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매년 이들 기업의 성과를 다시 취재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동국산업 철구조물 사업서 분사
한국선 살 길 없어 무조건 해외로
설비도 없이 도면만으로 첫 수주
"진솔해야만 고객의 신뢰를 얻어"
캐나다에 현지공장 세워 제2도약


진솔함. 정학근(59) 동국S&C 사장이 꼽는 경영자의 최대 덕목이다.

"거짓말.눈속임으로 순간은 모면할 수 있지만 결국은 일을 망치게 된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진솔해야만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죠."

그런 그가 2001년 금방 틀통 날 거짓말을 했다. 정 사장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일종의 사기를 쳤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게 회사의 성장 기폭제가 됐다. 2001년 초 미국 최대의 전력업체 FPLE는 발전기와 프로펠러를 지탱하는 풍력발전용 윈드타워 납품업체를 찾다가 우연히 동국S&C를 알게 됐다.

미국 풍력발전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놓은 동국S&C의 윈드타워 사업소개서를 FPLE가 본 것이다. 그러나 사업소개서는 사실과 차이가 있었다. 당시 동국S&C가 가지고 있었던 건 동국산업 시절의 철구조물 사업 노하우와 윈드타워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 뿐이었다. 관련 설비도 제작 경험도 없었다.

"FPLE 측이 윈드타워 50기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재차 확인하더니 공장 실사를 요구했습니다. 당황했지만 무턱대고 '오라'고 했습니다."

정 사장은 제작 공정을 도면화해 자신의 방 한쪽 벽에 붙였다. 주문을 달라는 일종의 시위였다.

"석회가루로 선을 그어 구획을 나눈 공장을 둘러보며 '여기는 용접기를 놓을 자리 여기는 절단기를 놓을 자리' 식으로 설명하니 FPLE 실사팀이 기절초풍을 하더군요."

FPLE도 쫓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해 12월까지 윈드타워를 납품받지 못하면 풍력발전 프로젝트를 놓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동국S&C의 의욕과 빠른 의사 결정에 마음이 동한 FPLE가 조건부 제안을 내놨다. 12월까지 50기의 윈드타워 전량을 납품하지 못하면 프로젝트 취소에 따른 손실 전액을 동국S&C가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동국S&C는 물론 모회사인 동국산업도 풍비박산이 날 수 있는 조건이었죠. 며칠간 수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한번 해 보자'며 덤벼들었습니다."

긴장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이틀이 채 안 걸리지만 첫 윈드타워 제작엔 한 달이 소요됐다.

그러나 결국 해냈다. 철구조물 제작 노하우 덕분이었다. 게다가 덤까지 생겼다. 여러 제품을 비교 평가한 FPLE가 동국S&C를 다른 업체에 소개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FPLE가 발전기 제조업체인 베스타스(덴마크)에 베스타스가 GE(미국)에 동국S&C를 소개하는 식이었다. 동국S&C의 수출액은 2004년 1000만 달러를 넘기더니 2007년 1억 달러 지난해엔 2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젠 세계 시장 6% 미국 시장 14%의 점유율을 가진 세계 '넘버 원' 윈드타워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이 같은 고속성장은 입소문도 큰 역할을 했지만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풍력발전에 사용되는 윈드타워는 높이 80m. 그 큰 키로 적어도 20년간 200t 가량의 발전기와 프로펠러를 지탱해야 한다. 보통 기술로는 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강풍과 지진으로 풍력발전기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동국S&C의 윈드타워는 늘 무사했다.

성공 스토리를 써 가고 있지만 정 사장에겐 가슴 아픈 얘기가 있다. 동국S&C는 2001년 동국산업의 철구조물.건설.엔지니어링 사업 부문이 분할돼 설립된 회사다. 회사가 좋아 분할된 게 아니었다. 초창기 얘기를 꺼내자 정 사장은 목이 메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눈가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철구조물 등 3개 부문의 적자가 연간 70억원에 달했습니다. 동국산업이 살기 위해선 회사를 쪼갤 수 밖에 없었지요."

동상에 걸린 손가락을 잘라 내는 식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회사의 정규직은 당시 정 사장을 포함해 16명 뿐. 새로운 살길을 찾지 못한다면 폐업도 불가피했다.

"한국에선 돌파구가 없어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다가 무엇을 팔아야 할지 전혀 감이 없었죠."

정 사장은 직원 5명을 미국으로 보냈다. "우리가 팔 수 있는 게 뭔지를 찾으려고 직원들이 LA 롱비치항에서 미국으로 수입돼 오는 물건을 며칠이고 지켜봤습니다. 그러던 중 윈드타워라는 게 야적장에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이템 같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풍력'이란 단어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리더군요."

윈드타워 사업은 그렇게 시작돼 FPLE와의 인연으로 연결됐다. 첫 수주를 따내기 위해 비록 선의의 거짓말을 했지만 거래처와의 약속은 철저히 지켰다. 이게 믿음을 샀다.

에피소드 하나. 정 사장은 2006년의 원화가치를 달러당 1250원으로 잡고 사업계획을 짰다. GE의 주문도 그 가격에서 정해졌다. 그런데 원화가치가 달러당 900원대로 오르자 문제가 커졌다. 그는 GE 본사로 날아가 "단가를 올려 주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쓰러질 수 밖에 없다"고 사정했다. GE가 이를 받아들였다. 수십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흔쾌히 올려 줬다. GE 역사상 이미 체결된 계약 가격을 올린 건 처음이었다.

세계 1위 윈드타워 제조업체가 됐지만 정 사장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시작'이란 거대한 해외 시장을 가리킨다. 북미 시장을 겨냥해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현지 공장을 곧 설립한다. 중국 시장도 열어 볼 참이다. 육상 풍력이 한계에 부딪힐 것에 대비해 해상 풍력에도 도전장을 냈다. 후보 선수 16명으로 출발한 '공포의 외인구단'이 또 한번 일을 벌일 태세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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