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진의 교육 사랑방] 좋은 아빠 되기 (1)
래니어중 카운슬러
얼마 전 Fairfax County에서 주관하는 한인부모들을 위한 ‘자녀양육기술 강화’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4주간 진행되는 그 프로그램에는 20명에 가까운 엄마와 아빠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엄마, 아빠가 되고 싶은 일념으로 피곤한 일정 속에도 매주 1회 수업을 통해 열심히 ‘좋은 부모 되기’ 를 위해 공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보통 강의를 하게 되면 수업에 임하는 학생(학부모)들은 강사인 제가 마치 뭔가 좀 다른 아빠인것 처럼, 특별히 뛰어난 자질을 갖춘 아빠처럼, 기대 속에 강의를 경청하곤 하는데, 사실 제 마음 속에는 그런 모습이 조금 더 좋은 강의를 해야겠다는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솔직히 마음 속에 부담으로 다가 올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만큼 저는 전혀 완벽하지도, 또 남과 다른 아빠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내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 입니다.
4주 수업 중 하루는 아이들에 자존감을 어떻게 높여 줄 수 있느냐에 대해 강의하는데, 수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말기’ ‘아이들의 얘기에 귀기울여 들어 주기’ ‘아이들의 눈높이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기’ ‘인내하기’ 등이었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며, 소리 높여 강의를 진행하고 ‘우리 모두 다음 한 주간은 정말 이런 내용들을 삶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이번 주 수업에서 드리는 숙제입니다’ 하는 말로 수업을 마친 나는 뿌듯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늦은 저녁 식사 후 고등학교 에 다니는 첫째 딸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이의 방에 들어 선 저에게 ‘이론과 실기 따로 놀기’ 가 주는 도전은 단 몇분도 안 되 어김없이 찾아 왔습니다.
뭔가 잘못을 한 딸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데, 이런 저런 이유를 대는 아이의 얘기가 제게는 구차한 변명으로 들렸고 아이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 보기도 전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아빠도 실수하고 누구나 다 실수를 한다. 하지만 실수를 했으면 변명을 할게 아니라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새로운 기회를 구하는게 옳은 거다’ 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장황한 내용의 설교(?)로 아이를 몰아 세우고는 방을 나왔습니다.
바로 한시간 전 열을 내며 강의했던 내용과 어쩌면 그렇게 정 반대가 될 수 있는지 딱 이럴 때는 자녀양육 수업을 강의하는 전문가에 모습이 아니라, 교실 저 끝머리에 앉아 수업을 들어도 모자란 형편 없는 학생의 모습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얼마후 딸아이의 방에서 꺼이 꺼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이러고 나면 바로 후회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차근 차근 아이에 얘기를 들어 줬어야 하는 건데...’ ‘누구보다 실수를 한 본인이 제일 속이 상했을텐데...’ 등. 그리고 나서야 뒤 늦게 벌려 놓은 상황 수습에 들어 갑니다. 다음 날 아침 딸아이가 일찍 등교를 하고 나서 딸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장문의 편지를 쓰는 겁니다.
편지를 쓰는 중에도 내가 왜 화를 냈는지, 왜 너에게 그런 얘기들을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변명을 하려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내 자신을 멈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편지를 써서 딸아이에 침대 위에 올려 놓고 출근을 하고,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집으로 들어 오자 큰 딸아이가 멋적게 웃으며 ‘Hi 아빠’ 하고 와서 안깁니다. 저도 내심 ‘편지 쓰길 잘 했구나’ 하며 딸아이를 더 꼭 안아 줍니다.
꼭 저의 개인적인 얘기를 얘로 들지 않더라도, 좋은 부모가 되기란 참 쉽지가 않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청소년 상담을 오래 했다고 해서 좋은 아빠가 되리란 법은 이세상에 절대 없습니다. 순간 순간 내 자신을 돌아 보고 순간 순간 더 좋은 아빠,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 없이는 이론과 실기가 따로 노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습니다.
말로는 ‘이렇게 합시다’ 하지만 그 말과 지식을 머리속만이 아닌 가슴 속에 항상 안고 살지 않으면 실수하기가 참 쉽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가슴 속에 안고 살아도, 그때 그때 실천에 옮기는 건 정말 더 어려운 얘기 입니다. 또 혹여 실수라도 하고 나서 그것을 주워 담는 것은 아빠 체면, 자존심 이런 걸 다 잠깐이라도 내려 놓아야 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산 넘어 또 산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산을 넘다들다 보니 한가지 깨달음이 생깁니다. 마치 육체적 건강을 위해 산을 넘는 사람들이 하산 때 마다 느낀다는 만족감, 뿌듯함 못지 않은 아빠로서의 가슴 뿌듯함은 둘째 치고라도, 딸아이들 가슴 속 깊은 곳에 심어 주는 사랑, 자존감은 분명 차곡 차곡 쌓여 나가고 있을 거란 사실입니다. ▷문의: wjlmat@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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