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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앞 자리만 좋은가?

고교 시절, 세종문화회관 뒤 분수대 광장에서 그 날 저녁 공연의 출연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오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다. 비싼 공연을 볼 형편이 아니었던 나는 출연자들에게 가서 꾸뻑 인사를 하고, 공연을 꼭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출연자들과 공연 제작진들은 자신들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떼어 어린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출연자와 제작진의 비표로서, 무대뒤를 들어 갈 수 있는 일종의 출입증이었다.

나는 그것을 달고 기다렸다가 식사를 마친 그들이 오면 함께 무대 뒤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즉시 객석으로 가서 공연 시작 때까지 비어 있는 자리들을 지켜보다가 끝내 주인이 없는 자리에 가서 공연을 보았는데, 비싼 공연일수록, 맨 앞자리의 초대석들은 비어있는 자리들이 많았다.

고교 시절 나는 자주 오페라와 연주회를 그렇게 무료로 보았다. 그런데 맨 앞자리가 공연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장 피에르 랑팔이 침 튀기며 연주하는 것까지도 보였지만, 감상을 하기에는 그리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조금 더 뒤로 가면 더 좋은 자리가 있었다.

얼마 전, 한 어머니께서 이메일을 하셔서 고교생인 딸이 학교 연극 활동에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고 걱정을 하셨다. 그 딸은 공부를 곧잘 하는데, 연극을 좋아해서 학교에서 자꾸 늦게 온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실제로 속상하신 것은 딸이 연극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딸은 무대 소품 담당이었다.

연기를 하는 학생들이 쓸 여러가지 물건들을 제작하고, 옷을 디자인하는 일을 그 딸은 너무 사랑했다. 식용 염료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무대 세트를 그리는 일을 하는 딸을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주연으로 연기를 하지 않을 바에는 아무도 몰라 줄 일을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어머니의 이메일에 답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아이들이 주연을 하려 하면, 행인1과 마을 사람 2는 누가하며, 뮤지컬에서도 모두가 주연만 하려 하면 코러스는 할 사람이 없어서 공연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나아가 소품을 담당하고, 음악과 조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공연을 할 수 없으니, 딸의 역할은 정말 좋은 역할이면서 중요하다고 알려드렸다. 딸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정말 연극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딸이 그처럼 중요한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니 공부를 놓지 않는다면 장려해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에 아들이 뮤지컬을 하고 연극을 할 때, 아들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나 단역을 맡아서 했다. 뮤지컬에서는 코러스였다. 이왕이면 더 앞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들이 그렇게 무대 위 뒤편에서 하는 연기와 노래도 의미있게 보았다. 아들은 친구들과 그 무대를 만들고, 많은 일을 함께 하면서 연기와 음악 이상의 것들을 얻었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은 부분을 각각 맡아서 하는 일은 하나같이 모두 소중했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너나 할 것 없이 어깨를 함께 하고, 공연의 마침을 축하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출연했던 아이들은 조명, 음향, 소품 등을 맡은 친구들을 모두 불러내어 감사를 표하고 박수를 보냈다.

자녀들을 모든 일에서 앞에만 서게 하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작아 보이지만 중요한 일은 해도 표시가 안나니 아예 말려야 하는 것인가. 모두가 다 투수를 하려 하면 야구 팀은 어떻게 시합을 할까. 쿼터백 자리가 아니면 안하겠다는 아이들을 모아서 어떻게 풋볼을 할 것인가. 맨 앞 자리만이 반드시 좋은 자리는 아니다. 중요한 자리는 더 있다. 공연장에서도, 경기장에서도, 그리고 인생에서도.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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