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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이노패스트 15'-10] 에스에너지

태양광 외길 26년 해외서 먼저 '통'했다
삼성전자 사업부에서 분사…고성장보다 장수 회사 꿈꿔
실패 두려워 않는 끈기 중시…채용 때 지방 출신 선호

‘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매년 이들 기업의 성과를 다시 취재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꿈의 산업' '미래산업'. 요즘 태양광 산업 그렇게 불린다. 그런데 1980년대 초에도 그랬다. 오일쇼크로 뒤숭숭하던 때였다. 홍성민(49) 사장이 26년 전 처음 태양광과 인연을 맺은 건 그런 분위기에서였다.

하지만 꿈은 여전히 꿈에 불과했고 미래는 영 오지 않을 듯했다.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 정부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에 따라 실적도 들쭉날쭉하다. 돈 안 되는 사업이라고 설움도 많이 겪었다. 그는 "비전이 아니라 오기로 버틴 세월"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 '주역'이 풀어놓는 변화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는 26년간 태양광만을 궁리하고 파고들었다. 숱한 고비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켰고 결국 세계 시장과 통했다. 그리고 이제는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을 튼튼한 기업을 만들고 싶어 한다.

#궁하면 변한다

"내 운도 결국 여기까지인가…."

지난해 초 홍 사장은 해외로부터 날아든 e-메일을 보다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2008년 태양광 모듈을 사간 독일 바이어가 보낸 것이었다. 제품을 설치하고 막상 전력을 생산해보니 출력이 해외 경쟁사 제품보다 15%나 적게 나왔다는 것이다. 보상을 요구하는 문구도 덧붙었다.

사정이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간 제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외화를 한 푼이라도 벌어 환손실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나간 해외시장이었다. 일단 판매는 원활했다. 우선 해외 유명사 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앞섰다. 또 대규모 유통망 대신 설치업자들을 직접 공략해간 전략이 주효했다. 한 명이라도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았다.

"해외 유명업체들은 10㎿ 정도는 주문해야 물건을 내줬는데 우리는 100㎾짜리 주문도 달게 받았습니다."

생존을 위해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끌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준비가 다소 부족했고 홍 사장도 그 문제가 늘 마음에 걸렸던 차였다. 그는 "서두른 탓에 해외 경쟁사 제품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파악이 안 돼 있었다"고 말했다. 태양광 모듈은 품질을 속일 수 없는 제품이다. 일단 설치되면 전력이 얼마나 생산되는지 금방 수치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변하면 통한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홍 사장은 직원들을 독일로 급파했다. 현지에 도착한 직원들은 설치된 제품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그러자 설치와 배선 연결이 잘못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시스템을 연결했다. 놀랍게도 출력이 경쟁사 제품을 넘어섰다. 바이어의 태도도 확 달라졌다. 보상 협의를 하러 갔던 직원들이 추가 주문까지 받아 왔다.

반전은 계속 이어졌다. 지난 겨울 유럽 지역에는 유난히 폭설이 잦았다. 눈의 무게를 못 이겨 태양전지 패널이 줄줄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에스에너지 제품은 버텼다. 확연히 드러난 내구 품질에 현지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내구성에 초점을 맞춘 탓에 "제품 디자인이 중국 것보다 투박해 보인다"는 불평이 빈번해 홍 사장의 고민이 늘던 차였다.

여기에 이르는 길은 결코 순탄치가 않았다.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이후 홍 사장에겐 말 그대로 매일매일이 위기였다. 그는 전기공학 석사를 딴 뒤 1983년 삼성전자 연구소에 입사해 태양광 연구를 시작했다. 1992년 가전사업부 내 사업팀이 출범했고 투자가 시작됐다. 문제는 시장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는 점이다. 도서지역의 등대 고속도로변의 긴급전화기나 통신용 중계기에 달리는 게 고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가 닥쳤다. 비핵심 분야는 분사하는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돈 못 버는 태양광이 1호로 지목됐다. 그렇게 2001년 홍 사장을 포함해 네 명이 나와 설립한 게 지금의 에스에너지다.

2006년 이후 태양광 열풍이 분 덕분에 현재 직원 수는 242명에 달한다. 지난해 금융위기의 여파로 태양광발전 시장은 전년보다 5% 이상 위축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에스에너지는 오히려 매출이 전년보다 40% 가까이 늘며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다.

#통하면 오래 간다

매출은 오르는 반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홍 사장은 "조급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양광을 하면서 그가 꾸는 꿈은 고성장이 아니라 '100년 회사'다. 대기업들까지 태양광에 뛰어드는 상황이라 지금껏 그랬듯이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하지만 태양광에 대한 그의 지론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태양광은 최첨단 산업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이 회사는 태양전지 수백~수천 개를 합쳐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한번 설치하면 30년을 견뎌야 한다. 출력도 출력이지만 내구성도 중요하다. 그는 "우리 회사의 최대 자산도 첨단기술이 아니라 17년간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깨달은 노하우"라고 했다. 그는 직원을 뽑을 때도 지방 출신을 선호한다. 대학도 가리지 않는다. 사업의 성격상 위기를 헤쳐가는 자생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끈기를 중시하기 때문이란다. 독일에 갔던 직원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렸던 것도 그런 오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일단 해보고 생각하자." 그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그런 그에게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급속한 성장에 맞게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갑자기 몸무게가 두 배로 느는 거니 가만있으면 병이 안 생기겠어요? 매출이 100억에서 1000억으로 늘면 그에 맞게 사람도 생각도 바뀌어야 되겠죠. 나 자신부터 바꿀 겁니다."

100년 버티는 장수회사를 만들기 위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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