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론] 1988년과 2010년
오명호/HSC 대표
한국이 오직 쇼트트랙 경기에서만 강한 나라가 아니고 스피드 스케이팅, 그리고 겨울올림픽의 꽃인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등 서서히 영역을 넓히는 그야말로 전종목에 차근차근 도전하는 한국인의 끈기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겨울올림픽 제전이었다.
스포츠와 경제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올림픽 얘기를 하느냐고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독자도 분명 있겠지만, 나의 경험으로 보면 분명 상관관계가 있다.
지금 정말 신의 영역에 접어들었다는 찬사를 세계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피겨 선수 김연아가 ‘사우스 코리아’의 브랜드 가치를 얼마나 높였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우선 그 얘기를 해보자.
물론 유형적인 가치라면 쉬운 산수로 합계를 낼 수 있지만, 그 선수가 펼친 감동적인 연기로 얻은 ‘무형 자산’은 그야말로 계산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미국 프로야구 선수, 농구 선수들의 가치는 연봉과 광고로 벌어들이는 돈을 쉽게 합산하면 일년에 얼마를 벌었는가를 금방 알 수 있지만, 김연아 선수의 경우는 나라의 품위인 국격과 맞물려 있어 무형의 효과를 계산해내기가 쉽지 않다.
아시아의 소국, 그것도 대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의 햄처럼 끼여있는 한국에 던져준 무형의 가치를 산정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22년 전 영국 런던 금융시장에서의 경험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형자산 산출이 가능하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도상 어디에 붙어있는지 아는 은행이 드물었다. 고작 한국에 대한 지식이라곤 우리 삼촌이, 또는 우리 친척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라는 정도였다.
그렇고 그런 나라, 즉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울 수 없다’는 인식을 지녔던 영국인들에게 한국의 올림픽 개최는 매우 신기한 사건이었다.
한국을 폐허로 만든 전쟁이 끝난 지 35년 만에 세계인들의 축제인 여름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사실은 런던 금융가에 충격으로 다가갔다. 그 충격은 나에겐 행운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은 만성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나라였다. 매일매일 런던 금융시장에 나가 오직 돈을 꾸는 일만 담당하였던 나에게 정말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거의 구걸하다시피, 이자 불문 자금을 꾸던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행운의 여신이었다.
그것도 그렇게 콧대가 높았던 영국 은행들을 비롯한 독일 은행 등 유럽계 은행들이 한국 은행들에 돈을 꾸어 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올림픽을 개최하기 전에는 통상적으로 ‘런던 은행 간 금리(LIBOR :London Interbank Offered Rate)’에 0.5% 내지 1%포인트라는 고리의 가산이자를 지급하고 빌렸지만, 그 이후 가산금리는 거의 0.25% 혹은 0%포인트, 즉 가산금리 없이 빌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3000만달러를 빌릴 때, 가산금리 0.5%포인트를 줄이면 1년간 15만달러라는 이자가 줄고 1억달러를 빌리면 50만달러의 이자가 줄어든다.
이러한 수치는 개별 은행 입장에서는 분명 산정이 가능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계산하지 않은 무형의 자산이 더 크다. 또한 한국 기업 제품들이 얻는 마케팅 효과도 산정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다.
물론 올림픽이라는 제전을 한번 치렀다고 그렇게 많은 국가적 이득을 얻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분명 있지만, 올림픽을 치른 ‘메이드 인 코리아’는 분명 과거와 다른 대접을 받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언제, 대한민국이 세계에 이렇게 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이라고 알릴 기회가 있었느냐는 얘기고,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나라가 만들어내는 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지구촌 소비자들의 인식전환도 매우 큰 부수효과였다.
스포츠가 나라의 품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남아프리카 연방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작년 12월에 개봉된 ‘인빅투스’라는 영화에서 27년간 옥살이를 끝낸 흑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후, 흑백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럭비라는 경기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봐도 분명 스포츠는 인종을 넘고 지역을 넘는 단일한 힘을 만든다.
지금, 김연아가 세계에 알린 ‘사우스 코리아’는 내가 22년 전에 경험했던 88올림픽의 무형적인 가치보다 훨씬 크다.
한국에는 삼성전자가 TV와 휴대전화를 만들고 현대자동차가 자동차만 생산하는 나라가 아니라 김연아라는 ‘피겨전설’을 배출한 끈기의 나라라고 세계인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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