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판정에는 무조건 따른다
미국에 온 이후로 만난 사람들 중에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동성씨가 있다. 몇 번 만나면서 얼굴을 익힌 후로는 미국의 오노 선수와 경기할 때의 이야기를 물어 보고 싶었는데,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 편치 않은 기억을 다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후배들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되어 있다. 언젠가는 한 번 물어보아야지.동계올림픽 경기 가운데에서 가장 판정의 논란이 많은 종목인 쇼트 트랙은 그 때나 지금이나 판정을 놓고 말이 많다.
“아빠, 그래도 한번 심판이 결정하면 끝이에요.”
“고의도 아니고, 심하게 닿지도 않았는데, 저건 완전히 잘 못 판정했어.”
뱅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팀이 중국 팀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쇼트트랙 경기에서 1위를 놓치고 실격되자 나는 안타까워서 중얼거리는데, 아들은 담담하게 중계를 본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서 자란 네가 아빠 맘을 알겠냐. 나는 아들이 얄밉다. 아들의 그런 반응이 한국인으로서 느껴야 할 보통의 반응이 아닌 것 같아 영 맘이 편치 않다. 어쩜 그렇게 결과를 빨리 받아들이고 냉정하게 생각하는지. 아들은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심판의 판정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나보다 조금 더 편해 보인다. 나도 심판의 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의 정도가 더 강하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심판이 잘못 판정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판이 못 보게 반칙을 하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사실 심판도 사람인지라, 최선을 다해 경기를 진행하고 양심에 입각해 판정을 해도 의도와 달리 실수는 나오게 되어 있다. 가을 내내 주말마다 나를 흥분시키는 대학 풋볼 경기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터치다운이 아닌 것이 터치다운이 되고, 반칙이 아닌 플레이를 반칙으로 보아서 경기의 승패가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방송은 계속 느린 동작으로 여러 각도에서 잡은 화면을 보여주는데, 그 한번의 오심으로 경기 결과가 뒤집혀서 지는 팀은 억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인들은 경기 중 한 번 내려진 판정은 비록 그것이 오심이라도 번복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제소를 하면서 강하게 따지거나 항의를 하는 일이 많지 않다. 대신 오심이 판명되면, 심판들의 관리 체제로부터 심판에게 징계가 따른다. 오심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팀의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심판들이 모여 미숙한 심판을 징계하고 교육한다. 그래서 오심이 있을 경우, 미국인들은 오심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챙긴 팀보다는 그 경기의 심판을 비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렇게 판정에 승복하는 문화가 빛을 발하는 분야가 미국의 정치 분야이다.
선거와 표결에서 결과가 나오면 두말없이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작년에 우리 지역 공직자 선거에서 단 89표 차이로 낙선한 정치인은 개표 후 재검표를 요구하지 않고, 상대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정도 차이라면 재검표를 할 만도 한데, 그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패자도 멋지고, 패배도 머지않아 승리를 만들 수 있음을 나는 보았다.
우리 한국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상상력이 다른 민족보다 풍부하다. 그래서 매사에 보이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근소한 차이의 결과나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내려진 경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쉽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한 마음에 상대 팀을 오래도록 미워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그런 오기와 끈기가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큰 틀에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재기를 위해서 편치 않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아직 부족함을 나부터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속상함이 없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석연치 않은 판정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을까? 미국인들도 심정은 다 같되, 다만 그들은 우리보다 빨리 속상함을 감추고 승자를 인정하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희로애락을 느끼고 겉으로 표현하는 두 문화 사이의 정도 차이라면 과장일까?
근소한 차이로 지난해 우리 지역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그 날 밤 깨끗이 결과를 받아들였던 정치인이 한인인 점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본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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