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진 목사의 30일간 노숙자 체험기-5] 어디로 가시나이까? (2)
노숙자의 고통…예수 체험의 현장
미국서 최초로 노숙자 등록, 실내 농구장서 집단 숙박
마른 빵조각에 10년 사역 떠올라
내 인생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노숙자로 등록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미국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도 스쳐갔다. 그러나 노숙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다고 생각하니 담대해졌다.
잠시 후 그녀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인종 란에 Black이라고 적었다. 아시안 노숙자를 본 적이 없었나보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흑인노숙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내심 움터나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밤 11시20분이 되어 한 직원이 이곳 쉘터에 침대가 없다며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집합을 시켰다. 30여 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직원이 갑자기 나를 막고는 내 앞 사람까지 밴에 태우며, 자리가 없어 안에 들어가 다시 기다리라고 했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밤 11시40분이 되어 직원이 나머지 노숙자들을 낡은 밴에 빈틈이 없이 꽉 끼어 태웠다. 만원 전철에 갇혀있듯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몸을 부대낀 것은 처음이었다. 술냄새, 악취냄새, 심지어 입냄새까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게다가 흑인 운전자는 노숙자들을 짐짝처럼 다루며 커브 길에서도 너무 거칠게 차를 몰아 어깨는 물론 심지어 머리까지 서로 부딪쳤다. 마치 수용소로 끌려가는 전쟁포로 같은 기분이랄까. 매일 이러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노숙자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을 하고 나니, 노숙자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이 넘어 도착한 곳은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운영하는 레크리에이션 센터 실내 농구장이었다. 베드와 담요를 배정을 받고 나니 밤12시10분이 되었다. 저녁을 못 먹은 터라 배가 무척 고파왔다.
때마침 한 직원이 놀라울 만큼 얇은 샌드위치를 하나씩 주었다. 작은 식빵에 슬라이스 햄 두 쪽뿐, 야채나 양념도 없었다. 맛은 짜고 음료수도 없어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그간 11년 동안 10만 명분 이상의 음식을 노숙자들에게 먹였는데…. 그것도 내용이 풍부한 두꺼운 샌드위치에 불고기까지. 나를 위해 겨우 얇은 샌드위치 하나뿐이라니 야속하고 섭섭해 눈물이 핑 돌았다.
체육관에는 샤워장도 없고 화장실만 있었다. 세면이나 양치질 하는 노숙자들도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혼자서 세면을 하거나 양치질을 할 용기가 없어 아침에 일어나 하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세수를 하거나 양치질을 하는 노숙자가 한 명도 없었다. 쉘터에서 잠을 자는 것도 고난 그 자체였다. 체육관에서 대형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음과 같았습니다. 게다가 옆에서 같이 자고 있는 노숙자 형제가 코를 고는 소리까지. 결국 비행기 두 대가 옆에서 잠을 방해하는 바람에 20분마다 잠을 깨야 하는 고통을 당했다.
여러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새벽 네 시쯤에 눈을 떠보니, 어느 검은 물체가 내 머리 곁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제는 “I’m sorry!”라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베개를 대신해 머리 밑에 둔 배낭에는 나의 귀중한 정보들이 담겨있는 노트북컴퓨터가 있었고, 주머니에는 비상용 크레디트 카드를 넣어 둔 지갑이 들어 있었다. 감사하게도 도둑을 맞지 않도록 그 시간에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옆에서 온갖 소음을 내고 있던 두 대의 비행기 덕분이었다.
어디를 가야할지 모른다는 것, 다시 말하면 노숙자의 인생이란 아무런 희망이 없는 그저 두려움과 공포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길을 선택하셨다. 나는 노숙자체험을 통해 커다란 한 가지를 배웠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가 하늘에 있기에 더 많은 것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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