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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이노패스트 15'-7] 에이스테크놀로지

에릭슨·노키아(세계 1,2위 통신장비업체)가 모두 고객
탄탄한 사업 네트워크 자랑

‘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매년 이들 기업의 성과를 다시 취재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이동통신 안테나·필터 메이커 공장 신축으로 재도약 채비중
'제품에 무한 책임' 경영 철학…고객 잘못에도 90억 무상교환


SVEA SISU. 인천 남동공단의 에이스테크놀로지 본사 6층에 있는 회의실 이름이다. 앞엣것은 스웨덴의 옛 이름이고 뒤엣것은 희망이란 뜻의 핀란드어다. 하나는 에릭슨(스웨덴) 다른 하나는 노키아지멘스(핀란드)를 위한 공간이다. 세계 1 2위 통신장비업체 사이에서의 성공적인 '양다리' 회의실 이름에서도 잘 나타난다. "기술은 물론 서비스까지 고객 눈높이에 맞춘 덕분"이라는 게 구관영(62) 회장의 설명이다.

시작은 1980년 안테나 수입업체였다. 그 뒤 카폰 안테나 메이커로 다시 이동통신 기지국용 안테나.필터 제조사로 진화했다. '세계 최고 회사를 뚫어야겠다'는 생각에 에릭슨의 문을 처음 두드린 건 95년. 2년여간 공들인 끝에 97년 100만 달러어치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에릭슨의 '전략적 파트너'로 인정 받은 지금은 에릭슨에 대한 매출이 4000만 달러에 달한다. 2006년엔 노키아지멘스와도 거래를 텄다. 지금은 두 회사에 대한 매출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변화가 빠른 통신장비 시장은 기술력 못지않게 전략적 제휴 관계가 중요하다. 구 회장은 고객회사의 기대치에 맞춰 회사를 키워갔다. 유럽과 미국에 판매지사를 뒀고 2000년엔 에릭슨의 희망대로 중국에 진출했다. 거인의 등에 올라탔던 셈이다. 기술혁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1년엔 안테나 신호의 손실을 줄여주는 장비인 TMA의 개발에 성공했다. 세계 TMA 시장에서 에이스테크놀로지의 점유율은 25~30%에 이른다.

성공의 바탕엔 구 회장의 고집스러운 원칙이 있다. '제품에 대한 무한책임'이 그것이다. 5년쯤 전이다. 한국 통신사에 기지국용 안테나를 납품했을 때였다. 납품액수는 100억원인데 하자가 생긴 물량이 90억원어치에 달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동통신 기술이 2세대에서 3세대로 넘어가는데 안테나를 2세대용으로 발주한 통신사의 책임이 컸다. 하지만 그는 고민 끝에 통신사에 "100% 무상 교체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무상 교체해준 물량은 10억원어치 정도였어요. 이후 그 통신사가 시스템을 전부 3세대로 교체하면서 우리에게 거의 100% 납품권을 줬죠. 그때 '못 바꿔준다'고 버텼으면 그 주문은 딴 데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회사가 이 정도에 이르기까지 곡절이 없었을 리 없다. 90년대 말 에이스테크놀로지는 승승장구했다. PCS 서비스가 시작되고 코스닥에 상장(97년)하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99년엔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그 이듬해 구 회장은 '2010년 매출 1조원'이란 목표를 내걸었다.

"10년 뒤 1조원 까짓것 못하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인 올해 에이스테크놀로지는 해외 공장까지 합쳐도 3000억원 정도를 예상한다. 매출은 몇 년째 정체 상태다. "목표 달성은 못하겠다"는 게 구 회장의 솔직한 답이다.

"내가 왜 그렇게 겉멋이 들었던가 돌이켜보니 그때 사업에 권태기가 왔어요."

그는 2003년 전문경영인을 영입했다. 자신은 사업보다 취미와 여행에 몰두했다. 그 공백기 4~5년이 컸다. 회사는 조금씩 흔들렸다.

"회사를 맡겨놓고 현장을 안 챙겼던 내 탓이었지요." 그 뒤 구 회장은 자기 손으로 키운 에이스테크놀로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안테나 중 한 품목에서만 자꾸 불량이 났다. 담당 팀에 "도대체 어떤 부품으로 구성돼 있는지 데이터를 가져오라"고 했다. 오너 회장의 지시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큰일 났다 싶었다. 당장 부품 리스트를 하나하나 따져봤다. 직접 수입하면 될 부품을 비싼 값에 청계천에서 사오는 등 허점투성이였다. '에이스의 정신이 죽었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당장 대표.임원.부장.팀장급을 아침마다 모아놓고 '정신교육'에 들어갔다. 못하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거기서 그가 발견한 건 팀장급 중에 보석 같은 인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사급을 빼고 팀장들을 부문장에 앉혔다. 그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은 사표를 냈고 구 회장이 다시 경영을 직접 챙겼다.

그로부터 1년 반 회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2008년 적자에서 탈출했다. 아이템별로 들쭉날쭉하던 생산수율(합격품 비율)은 지난해 여름부터 안정을 찾았다. 2009년 매출은 금융위기 여파로 제자리였지만 보이지 않는 생산 시스템의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에릭슨 브랜드의 안테나를 개발하는 게 1년 반이나 지연됐어요. 내가 6개월만 먼저 들여다봤으면 지난해 500만달러는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죠." 주력 제품인 안테나.RF필터 시장엔 미국의 파워웨이브.앤드루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다. 에이스보다 덩치가 몇 배 큰 회사들이다. 하지만 구 회장은 해볼 만하다고 본다.

"4~5년 전엔 동경했던 회사들이지만 이젠 우리가 일사불란하게 힘을 합치면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 믿음이 내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고요." 도약을 위한 하드웨어는 갖췄다. 지난해 본사와 공장을 신축하면서 고급 기종 안테나의 성능 실험장비를 마련했다. 그동안 스웨덴 업체에서 빌려 쓰던 장비를 50억원에 직접 들여놓은 것이다. 올해엔 인도 첸나이 공장도 돌아가기 시작한다. 인도 진출 역시 에릭슨.노키아지멘스와의 파트너십이 바탕이 됐다. 인천 송도엔 연구개발센터를 짓고 있다.

"자신감과 열정에 찬 직원들이 있기에 2~3년 내에 매출 1조원 벽을 넘을 겁니다."

그가 2000년에 내건 목표 무산된 게 아니라 약간 수정됐을 뿐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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