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파멸 부르는 '말의 전쟁'
김동필/통합뉴스룸 에디터
문제의 발언은 그가 지난 주말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1500미터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후 나왔다. 사실 이번 그의 은메달은 거저 주운 것이나 다름없다. 앞서 가던 두 명의 한국선수가 결승선을 20여미터 남기고 동시에 넘어지는 바람에 4위로 처졌던 그가 어부지리를 한 것이다. 쇼트트랙 종목의 특성상 빈번한 일이지만 그는 또 한번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시상식 후 인터뷰에서 "더 많은 실격 선수가 나오기를 바랐다"는 등 스포츠맨답지 못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오노하면 떠오르는 것이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의 '할리우드 액션'이다. 이로 인해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인터뷰에서 "이번에 메달을 딴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결승선 코 앞에서 넘어진 두 선수에게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다. 빨리 잊고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는 정도의 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오노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도 봄눈 녹듯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요즘 말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또 있다. 한인들도 많이 거주하는 샌타클라리타 시의 밥 켈라 시의원이다.
얼마 전 한 집회에 참석한 그는 분위기에 고무된 듯 "지금의 재정위기와 치안문제는 늘어나는 불법체류자들 때문"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부참석자들이 "인종차별주의자 같다"고 항의하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자랑스러운 인종차별주의자(proud racist)"라고 되받았다는 것이다.
문제가 커지자 "그런 의미의 발언이 아니었고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고 발뺌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정치 이력에 위기를 맞았고 이민단체로부터 제소까지 당했다. 공직자가 스스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밝힌 것은 공직자 윤리규정에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다.
말은 생각을 전하는 수단이다. 상대방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언어다. 그만큼 직접적이고 파괴력도 크다. 하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기 어렵다는 특성도 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세인의 주목을 받는 공인의 말 한마디는 다양한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라면 더 하다. 정치인들이 직설화법 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중의적 발언을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문제가 생기면 빠져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기 위함이다.
말은 종종 본인을 합리화 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이용된다. 역설적인 표현으로 남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약점을 감추려는 것이다. 오노의 '실격발언'이나 켈라 의원의 '인종차별주의자' 발언도 이런 잠재의식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싶다.
오노의 발언은 "한국선수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편법 밖에 없다"는 고백으로 켈라 의원은 "각 분야에서 이민자들의 약진이 두려울 정도"라는 위기감의 다른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은 '뒷말'과 '꼬투리잡는 말'이다. 이런 심리 기저에는 '내가 성공하려면 남을 깎아 내리고 발목을 잡아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것이 스스로를 몰락으로 이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이다. 최근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말의전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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