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폭설
공군 병장 시절, 눈이 하루를 넘도록 내린 적이 있었다. 비행단의 모든 장병들이 쉬지 않고 눈을 치우다가 하루 해가 저물었다. 밤에도 계속 내리는 눈을 치우는 일은 말 그대로 작전이었다. 활주로의 눈은 제설 장비를 가진 차들이 치웠지만, 비행대대 근처와 격납고로부터 활주로까지의 넓은 길은 장병들이 직접 제설 작업을 해야 했다.한 팀이 너까래를 사용해서 눈을 밀면, 다른 팀은 빗자루를 가지고 싹싹 쓸었다. 눈이 그치면 즉시 언제라도 전투기가 발진할 수 있도록 눈이 오는 중에도 계속 치워야 했다. 영하의 날씨에 칼바람이 부는 비행장이었지만, 온몸이 땀에 젖고, 머리에서 김이 모락 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눈에 대한 아름답고 낭만적인 상상을 그 때 눈을 쓸면서 함께 쓸어 버렸다. 그 때부터 눈은 더 이상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고통스런 일거리였으며, 차가운 겨울을 의미했다.
한국을 떠나 유학 올 때, 나는 추운 겨울이 없는 미국 남부의 학교로 왔다.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사는 남부 도시에 눈이 오던 날, 방송에서는 수십 년만에 내린 눈이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은 ‘호들갑’이었다. 새벽에 잠깐 기온이 영하를 기록하면서 내린 눈의 양은 1센티미터 정도였는데, 도시의 모든 학교와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아니, 고작 그 정도 눈에 도시가 모두 멈추다니. 나는 놀랍고도 웃음이 나왔다. 만일 눈이 5센티미터만 오면 난리가 나겠구나. 나는 미국인들이 약간의 기상 변화에도 지나치게 반응을 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눈이 없는 도시에서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서 그렇게 조치를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늘 따뜻한 남부 도시에 제설 장비가 없으며, 제설 예산도 없기 때문에 휴업이 최선의 대책이라는 것이다. 눈이 오는 날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는 확실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눈오는 날을 좋아하고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당연하다. 예측하지 않은 기상이변으로 인해 눈이 올 때 이미 등교한 아이들이 오전 수업만 하는 경우도 있고,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다가 눈이 오자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내일 눈이 온다’는 말은 ‘내일 학교에 안간다’는 말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주 버지니아에 내린 눈은 ‘폭설’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릴 정도였다. 이틀 내내 내린 눈이 세워놓은 차들을 완전히 감추어버린 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넘어서 걱정이 되었다. 차 위에 쌓인 눈이 차를 누르는 무게가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어서 저온으로 눈이 얼어버리면 그 눈을 치워내는 것도 힘들 것 같아 아들과 같이 삽과 비를 들고 나갔다.
“아빠, 이거 완전히 차를 눈 속에서 꺼내는 일이네요.”
“살다가 이렇게 큰 눈은 처음이다, 정말.”
우리집 차 두 대는 눈에 감추어져서 마치 옛 왕릉처럼 곡선을 만들고 있었다. 제설 차량이 한 번 정도 길의 눈은 치웠지만, 차 주위는 눈이 고스란히 쌓여서 허벅지까지 눈에 잠겼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은 완전히 각도를 꺾고 옆으로 누워 있었고, 어디가 길이고 길이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삽질은 전신 운동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아들과 눈을 치우는데, 옆 집에 혼자 사는 아주머니가 자기 차도 눈 속으로부터 꺼내달란다. 자기는 의사로부터 무리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아서 아무 것도 못한단다. 아들은 나보고 답을 하라는 표정인데, 우리 것도 힘든데 언제 그 집 것을 또 하느냐는 눈치다. 내가 우리 차들의 눈을 우선 치우고 난 후 도와주겠다고 웃으면서 말하자 아들은 답답하다는 얼굴이다. 그러더니 화장실을 가겠다고 집에 가서는 나오지를 않는다. 눈 속에 제발로 나올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미국 사회가 이해가 안되었다. 눈이 온다고 학교를 안가고, 날씨가 안 좋다고 학교를 안간다. 정부도 기업도 날씨에 따라 휴업을 결정한다. 장마 중 폭우 속에서도 꼬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가는 한국에서 자란 나의 눈에는 미국인들이 그렇게 쉬는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아무리 눈이 와도 출근하고 학교 가서 할 일 다 하던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추워도, 눈이 와도 학교 수업이 취소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미국인들의 모습은 여유 내지는 ‘만사불여튼튼’이었다. 하루 일 안하면 얼마의 손해가 나는지를 수치로 정확히 계산해 내는 그들이지만, 전체적인 합의 속에 쉬면서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모습이 이제는 나의 눈에도 익숙하다.
일기예보에서 눈이 또 온다니 아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는데, 출근을 못해서 할 일을 계속 못하고 미루는 나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그나저나 왜 이리 온 몸이 쑤실까?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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