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도소주' 한잔, 악귀야 물렀거라
‘산초와 백자 등으로 술을 빚으니 그 향기 그윽하네 / 도소주는 옛날부터 이 세상에 이름이 나 있었구나.’조선시대 학자 박순(1523~1589)이 지은 ‘음도소주 (飮屠蘇酒: 도소주를 마시며)’라는 시구다. 도소주는 예부터 설날 아침 먹는 세시주로 알려져 있다.
악귀를 물리치는 술, 귀신 잡는 약술이라는 의미란다. 도소주와 관련해선 ‘한 사람이 먹으면 한 집에 역질이 없고, 한 집이 먹으면 한 고을에 역질이 없다
(一人飮之 一家無疫 一家飮之 一鄕無疫)’는 기록도 전한다. 도소주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세시주이지만 3년 전부터 배상면주가가 정월에 2000병씩 한정판매로 내놓으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술술 만들 수 있는 술
도소주 빚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청주에 약재를 넣어 끓이면 된다. 어떤 약재를 넣느냐가 문제다. 조선시대 문헌인 〈동국세시기> 〈동의보감> 〈고사촬요> 등에 기록된 한약재의 종류는 조금씩 다르다.
홍승헌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는 "길경(도라지).천초.방풍.백출.진피.육계 등이 주 재료"라면서 "자양강장제이면서 피부병이나 혈관계 질병을 다스리는 약재"라고 소개했다. 허시명씨는 "약재들의 색이 대부분 붉다는 점에서 악귀를 쫓아 낸다는 벽사(僻邪)의 믿음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고도 했다.
재료는 달라도 만드는 법은 같다. 한약재를 주머니에 넣어 섣달그믐날 밤 우물에 담가놓는다. 그리고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꺼낸다. 이를 청주에 넣어 몇 번 끓어오르게 달인 후 차게 식히는 것. 이렇게 준비한 도소주는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가족이 모여 앉아 한 잔씩 돌아가며 마신다. 술을 마실 때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한다. 마을 우물에 약재를 담가놓아 가족뿐 아니라 이웃의 건강도 도모했다.
잊혀져가는 전통주 즐길 수 있어
도소주를 마시는 데는 법도가 있다. 가족이 둘러앉아 어린 순서부터 한 잔씩 받아 마신다. 홍 교수는 "젊은이들이 나이를 먹어 점차 어른이 되어감을 어른들이 축하해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른들에게 술 마시는 예법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소주는 끓여 먹는 술이어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 아이들이 조금 먹기에도 괜찮은 술이다. 한약재를 넣어 끓여낸 청주이니만큼 향이 풍부하다. 엷은 황금빛을 띠며 술맛은 부드럽고 약간 단 편이다.
도소주를 마시는 풍속을 일컫는 말인 도소음(屠蘇飮)은 신라시대 중국에서 들어와 고려시대에 성행했다. 조선시대엔 상류층 일부만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를 거치며 잊혀졌다. 일본에선 오히려 도소주의 전통이 남아있는 편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요리와 푸드 스타일링을 공부한 조은정 식공간연구소 소장은 "일본의 경우는 도소주 전통이 활발히 살아있다"고 소개했다.
도소주 만드는 법
한약재상 등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사다가 시중에 나와 있는 청주에 넣어 끓여내면 된다. 우선 집에서는 독성이 있는 한약재는 빼고 쉽게 만드는 게 좋다.
■ 재료
청주 1.8L 2병 백출 67.5g 길경(도라지).천초.계심(계피의 속껍질) 각 56g
■ 만드는 방법
1 약재를 잘게 썰어 베주머니에 넣어 물에 담근다. 이틀 뒤 새벽에 꺼낸다.
2 청주 2병을 솥에 넣고 약재를 담가 몇 번 끓어 오르게 달인 뒤 식힌다.
TIP 그때 그때 마시는 술 도소주.두견주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만큼 술 문화도 각 계절에 산출되는 재료들을 빚는 '절기주'의 형태로 발달했다. 설날 아침에 마시는 도소주 봄이 오면 진달래꽃을 따서 두견주를 빚어 나눠 마셨다. 한식엔 찹쌀로 빚은 맑은 술 청명주를 제사상에 올렸다. 단오날엔 동동주의 일종인 부의주에 창포뿌리를 넣어 숙성시킨 창포주를 즐겼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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