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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 목사의 30일간 노숙자 체험기 -2] 마틴 루터 킹 도서관의 노숙자

흑인 인권가 기리는 기념관…경찰도 이곳선 몰아내지 않아

워싱톤DC 다운타운의 중심가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님 기념 도서관이 있다. 원래는 디씨 정부가 운영하는 중앙도서관으로 1903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여한 가운데 마운트 버논 지역에 오픈 되었다가 1972년에 확장개관을 할 때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도서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수가 흑인인 디씨 다운타운에 있어서 그런지 도서관 건물 색이 어둡고 침침해 사람들이 이용을 꺼려할 것 같은데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다운타운 한복판에 위치한터라 지역주민들보다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많다. 그런데 이 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는 비밀계층(?)이 있다. 이들은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 카드도 없는데 가장 많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디씨의 노숙자들이다.

도서관에서 노숙자들과 일반 관람객들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쉽고 재미있다. 일반 이용자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자료를 컴퓨터로 검색하고 책장에서 책을 고르느라 매우 분주하다. 그러나 노숙자들은 도서관의 모든 책을 다 읽은 사람처럼 여유 있게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묵상에 잠긴다. 일반 관람객들은 책장을 넘기며 열공을 하는 반면에 노숙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책상에서 잠을 잔다. 마치 다독 혹은 통독의 도사들처럼….

이유야 어찌하든 마틴 루터 킹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장기 관람객들은 노숙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책을 잘 안 읽고 도서관 가는 것을 꺼리는 현대시대에 노숙자들이 도서관 관람객 수를 높여주는 고정 고객이니 만큼 도서관을 운영하는 디씨 정부의 체면에는 커다란 하자가 없을 듯하다.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 본 결과 일단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의회도서관이나 국립도서관들 그리고 대학도서관들은 거의 노숙자들에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노숙자들 대부분이 이들 도서관에서 출입증을 발급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유는 뚜렷한 집 주소 전화번호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ID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설령 노숙자들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도서관이라 할지라도 많은 경우 노숙자들이 코를 골며 낮잠을 자거나 심한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쫓겨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왜 마틴 루터 킹 도서관에는 여전히 노숙자들이 득실거리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요 인종화합의 실천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을 기념하는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일반 관람객들은 노숙자들 때문에 다소 불편을 느낄 수 있겠지만 모든 노숙자들이 도서관에서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음악을 감상하기도하고 영화를 보기도하고 신문이나 소설책 등을 읽기도 한다. 오히려 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요 언론의 자유요 인권운동의 값진 결실이요 마틴 루터 킹 도서관의 가장 멋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늦은 저녁 도서관 문이 닫히면 다수 노숙자들이 도서관 빌딩 입구에 장사진을 이루며 잠을 잔다. 다른 공공건물에서는 대부분 경찰들이 노숙자들을 몰아내는데 이 도서관만은 예외다.

오늘은 '아리'라고 이름을 밝힌 노숙자형제와 도서관 입구에서 슬리핑백을 깔고 누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제 역시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이 도서관이 좋아 이곳에서 살다시피 지낸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위대함을 노숙자들을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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