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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이노패스트 15'-5] '정우금속공업'

'동관 이음쇠' 부문 세계 1등 향해 뛴다
외국 제품 분해하고 베끼고 '맨 땅에 헤딩하듯' 기술 습득
"위기 이용해 돈 안 번다…어려울수록 신뢰가 중요"

‘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매년 이들 기업의 성과를 다시 취재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경영은 이론이 아니다. 실전 그 자체다. 이광원(60) 정우금속공업 회장에겐 특히 그렇다. 그가 목숨처럼 강조하는 품질관리와 고객관리. 대학에서 배우거나 책을 읽고 하는 게 아니다.

"제가 아는 건 책이 아닌 부딪히며 체험으로 배운 것입니다."

정우금속의 주력 제품은 동관 이음쇠. 동관의 방향을 바꾸거나 길이를 연장할 때 쓰이는 자재다. 1985년 그는 KS 규격을 획득했다. 동관을 만든 지 4년여 만에 품질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문제가 생겼다. 생산한 제품이 스스로 딴 규격에 미달했다. 한 달간 쏟아져 나온 불량 이음쇠만 돈으로 따져 3개월치 직원 월급에 맞먹었다. 고민만 하다가 또 한 달이 흘렀다. 그러는 새 직원 6개월치 급여 규모의 이음쇠가 쌓였다. 이 소식을 들은 도매상이 그를 찾아왔다. 싸게 팔라는 것이었다.

"정말 갈등이 많았습니다. 규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이전까진 별 이상 없이 팔던 수준의 제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불량 제품을 팔면 그걸로 나도 회사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에 걸쳐 불량품을 전량 폐기 처분했다. '이광원식 품질관리론'은 그렇게 나왔다. 지금도 회사 홈페이지엔 이런 슬로건이 나온다. '불량은 받지도 만들지도 보내지도 않는다'.

그 뒤 고뇌에 찬 결단을 해야 할 때가 또 닥쳤다. 외환위기였다. 97년 말 금속제품의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환율이 치솟은 까닭이다. 100원에 수입한 원자재 가격이 환율 효과만으로 200원이 됐던 시절이다. 미리 원자재를 사둔 업체는 굳이 서둘러 제품을 출하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반대로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신뢰 관계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도매상 등 고정 고객들에게 제품을 공급했다. 그 덕분에 상당수 거래 회사들이 위기에서 벗어났다. 물론 그도 어려웠다. 그래도 고객들을 유지한 덕분에 98년 회사의 매출은 전년의 2.4배로 늘었다.

"고객이든 경쟁자든 나만 사는 게 아니라 서로 동반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회사 이름도 정우로 지었습니다. 시장의 위기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고 싶진 않았죠."

이게 '이광원식 고객관리론'이다. 다소 목가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실력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터득한 것이다.

200억~300억원 규모의 한국 시장만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이 회장은 80년대 말부터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좀처럼 길이 뚫리지 않았다. 그는 "수출만이 살길이다란 절박감 외엔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디에다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88년 어렵사리 일본 업체에 납품했지만 불량품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일본 회사들은 기술 이전에도 인색했다. 이탈리아의 동관 이음쇠 업체를 찾아 기술 이전과 생산 협력 등을 요청했지만 거기서도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미국 업체를 따라가려니 자동화 설비에 너무 많은 투자가 필요해 이 또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오기가 아니었으면 그때 이미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베끼기로 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사가지고 온 제품을 보면서 도면을 그리고 그걸 기초로 금형을 만들어 샘플을 제작했다.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하기'였다. 지금도 경기도 양주의 공장엔 당시 해외에서 들고 온 샘플이 수북하다.

"정말 무식한 방법으로 일했지만 그 외엔 달리 길이 없었죠."

노력의 대가는 달콤했다. 동관 이음쇠의 경우 모든 국가에 공통되는 국제 규격이 없다. 이 회장은 기술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웬만한 국가의 이음쇠 규격을 다 확보하게 됐다. 바닥을 훑는 식의 기술 축적이 큰 무기가 된 것이다. 심지어 버려진 기계장비를 사다가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장비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력까지 갖추게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우금속은 680여개의 제품 규격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4300여 가지의 제품을 만든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이 확실히 자리 잡혔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세계적으로 우리가 유일할 겁니다."

기술력과 생산력 이는 실적으로 나타난다. 2008년 매출액은 870억원. 2004년 이후 5년간 연평균 7.8%씩 성장했다. 이 회장은 "올해 공장을 이전하기 때문에 가동률이 60%에 머물고 있지만 2008년 수준의 실적은 나왔다"이라고 말했다. 수익성도 제조업체로선 탁월하다. 제품을 팔아 얼마를 남기느냐를 보여주는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08년 14.7% 지난해 3분기까지 17%에 달했다. 특히 3분기엔 24.7%로 1000원어치를 팔아 247원의 수익을 남긴 셈이다.

현재 정우금속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59%. 2007년 이 회장이 인수한 SMI의 몫까지 합치면 정우 계열의 점유율은 80%가 넘는다.

그래도 이 회장은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10% 정도로 세계 4위에 머물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해외 영업망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동관 이음쇠만큼은 이미 일류라 자부하지만 동시에 1등 기업이 되도록 할 것"이라는 그는 계속 앞으로 내달릴 태세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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