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배워서 남준다
“저는 멋진 곡을 써서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싶어요.”“돈 벌고 유명해지면 뭐 할래?”
좋은 음악을 들으면 직접 그 곡의 악보를 그려서 친구들과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아들은 언젠가 멋진 곡을 자기가 써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단다. 폭스(Fox) 텔레비젼에서 방영해서 인기를 끈 드라마 ‘글리’(Glee)에 나오는 곡을 듣고, 마음에 들면 그 날 밤에 악보를 완성하는 아들을 보면서, 충실하게 음악 공부를 하면 그런 날이 올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스승 아래서 음악을 익히면서, 책을 많이 읽고,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 좋은 음악을 쓸 수 있겠지.
나는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생이 된 후까지도, 후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분야를 아들이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들에게서 음악을 공부하겠다는 강한 열정을 보고, 아들이 또 실제로 음악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부터는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면서는 도저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나의 생각이 내가 살아 온 과거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리잡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 개발도상국 시절에 성장한 나의 생각에 의해 미국에서 자란 아들의 미래를 설계하려 하는 것이 말도 안되게 느껴졌다. 게다가 세상은 또 얼마나 빨리 변하는가? 삼성이 소니를 누르고, 현대 차가 미국의 도로를 달리는 세상이 나의 인생에 올 줄은 정말 상상을 못했었다. 그래서 아들이 원하는 것을 공부하고, 과거의 기준이 아닌,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쓰임이 있는 것을 공부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들이 음악을 공부하여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혼자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힘든 상황을 겪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음악, 다른 문화권의 민족과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 들으면서도 여전히 통하는 음악을 아들이 만들면 좋겠다.
베토벤의 음악이 여러나라에서 여전히 연주되고, 톨스토이의 작품이 각국에서 변역되어 읽혀지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자주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과 다 영향을 주고 받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주문한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주변으로부터도 인정을 못받으며, 결국 고립된다. 자기는 성취를 하고 즐거운 생활을 할 때에도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자가 되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은 이 세상과의 소통을 막은 채로 돈만 벌겠다는 생각과 다름 아니다.
내가 잘 아는 치과 의사인 닥터 리(Dr. Lee)는 일주일에 하루 오후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쓴다. 돈이 없어서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 수년 동안 치과 한 번 가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를 제공한다.
성심껏 빈민들을 만나서 치아와 잇몸의 상태를 점검하고 치료하는 그는 가난한 환자들이 더 일찍 왔다면, 치아도 덜 상하고 치료도 불필요했을 것을 말하며 늘 안타까워 한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그가 자기 만을 위해 사는 사람, 부를 축적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사는 사람이 아닌 것을 느낀다. 만약 온 나라의 의사들이 닥터 리처럼 일주일에 하루 오후를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쓴다면, 온 나라의 병원들이 일주일에 하루 오후를 빈민들을 위해 문 연다면 세상은 분명 더 변하지 않을까?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동안 학자금 융자 받은 것을 갚으려면 그만큼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에, 젊은 의사들이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일하기를 선호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자기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의사가 부족한 시골 마을이나,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일함으로서, 못 가진 사람들과 덜 가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보며, 그런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아이들이 또 생기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제약사들이 치료약보다는 예방약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왔다면 인류는 많은 병들을 이미 극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씁쓸한 이유는 무얼까? 또 전쟁과 재난 피해 지역을 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진료 활동을 벌이는 의사들의 소식을 들으면 왜 존경심이 들고 마음이 따뜻해지는가?
인생의 목표를 자기의 안위와 부의 축적으로부터, 함께 사는 세상의 변화에 두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며 살든지 우리는 결국 전과 다름없는 세상에 있게 된다. 지진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티를 돕기 위해 미국의 대중 음악 가수들이 콘서트를 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단체들과 사람들이 모금 활동을 한다. 모두 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이다.
아들이 살아 갈 세상이 ‘나만을 우선 챙겨야 하는 차가운’ 세상이 아니라, ‘남을 이해하고 도와서 함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오게 하려면, 내 아이부터 말 그대로 ‘배워서 남주는’ 아들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겠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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