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이노패스트 15'-4] 지문인식 기술업체 '슈프리마'
"기업 출입문 둘중 하는 우리 회사 제품"
지문 채취 스캐너 FBI 인증, 매출액 70%가 해외서 나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생체인식 시스템 곧 나올 것
‘이노패스트 15’는 혁신(Innovative)과 고성장(Fast-Growing)을 주무기로 한 혁신형 고성장 기업을 가리킵니다.
‘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 매년 이들 기업의 성과를 다시 취재해 성공과 실패의 원인도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지문인식기술 업체인 슈프리마의 이재원(41.사진) 사장은 기술통이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하고 전기공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경기도 분당에서 대학 동문들과 창업한 뒤 그가 겪은 가장 큰 벽은 마케팅이었다.
창업 3년 만에 지문인식 모듈을 개발하고 판로 개척에 나섰으나 번번이 좌절했다. 당시 지문인식 제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벤처 붐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바이오 벤처들이 엉성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오차율이 40~50%나 되는 제품이 시장에 나돌았다.
슈프리마는 오차율을 1~2%대로 낮춘 제품을 갖고 나왔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불량품이 워낙 많다 보니 슈프리마의 제품도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해외로 가자."
기술력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수출로 방향을 돌렸다. 문제는 신생 업체가 세계 무대에서 제품을 알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이 사장은 홈페이지를 꼼꼼하게 만든 뒤 구글에 검색광고를 냈다. 검색창에 'fingerprint(지문)'를 치면 슈프리마가 가장 먼저 떴다. 해외의 선발업체들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권위 있는 국제 지문인식 경연대회에도 출전했다. 기술력으로 승부하기 가장 좋은 기회였다. 2회 연달아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해외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고 신뢰를 쌓아갔다. 제품 판매 첫해인 2003년 매출 7억원 중 90% 이상이 수출에서 나왔다.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뒤 국내로 진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사장이 지문인식에 눈뜬 건 필연적인 우연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학원을 마친 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지능형 차량 시스템을 연구했다. 그러나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접으면서 연구과제가 마땅치 않자 창업의 길을 택했다. 딱히 사업 아이템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창업 후 2년간 뭘 할까 고민하면서 기술용역을 했다.
그러다 한 고객회사가 지문인식 알고리즘 개발을 의뢰해 왔다. 이 과제를 연구하면서 이 사장은 시장성에 눈을 떴다. 센서와 영상을 통해 지문정보를 받아들여 이미 등록된 것과 같은지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는 게 지문 알고리즘의 핵심이다.
"그래 이거다."
수학이라면 무엇보다 자신 있었던 그였다. 회사명 슈프리마도 수학용어 '슈프리멈(100에 가장 가까운 수)'에서 따왔다. 일반적인 정보기술(IT) 사업과 달리 수학과 신호처리 이미지 프로세싱 등 여러 기술이 복합된 분야라는 게 그에겐 더 매력적이었다. 사업 경험이 없고 브랜드파워나 마케팅이 뒤지더라도 기술력으로 시장을 파고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꼬박꼬박 가져다주던 기술용역 사업은 과감히 접었다. 기술용역만으로도 대기업 연구원 이상의 수입을 얻었지만 안주하기보다는 도전해 승부를 걸기로 했다. 지문인식기술 개발에 '올인'한 지 근 1년 만에 첫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지문인식 모듈은 디지털 도어록 출입통제기 금고 신원확인 기기 등에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보안업체 에스원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수출 대상국은 이미 100여 개국에 이른다. 세계 판매량 1위다.
이 사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문인식 모듈과 솔루션을 결합해 완제품의 생산.판매에도 뛰어들었다.
'바이오 라이트 솔로' '바이오 스테이션' 같은 브랜드로 출입통제 기기와 근태관리 기기를 내놨다. 지문인식 시스템 시장에서 슈프리마의 점유율은 58%다. 회사 출입문이 지문인식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면 둘 중 하나는 슈프리마 제품인 셈이다.
슈프리마의 사업 영역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문이 패스워드나 열쇠를 대체하고 신분증에도 생체인식 정보를 담는 추세가 확산되면서다. 시장 상황도 좋다. 보안의식이 높아지고 효율성과 편리함 덕에 생체인식 관련 시장은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나라마다 전자여권 또는 전자 주민등록증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아파트 출입문부터 공항 출입국 심사대까지 지문인식이 일상생활을 파고들고 있다.
이런 훈풍을 타고 슈프리마는 전자여권 발급을 위한 여권판독기를 전국 구청과 재외 공관에 공급했다. 인천국제공항 내 항공사 카운터에도 슈프리마 제품이 깔렸다. 지문을 채취하는 라이브 스캐너는 한국과 일본 경찰청에 공급돼 범죄수사와 미아 신원확인에 쓰이고 있다.
이 라이브 스캐너는 지난해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연방수사국(FBI)의 인증을 받았다. 세계 표준으로 인정되고 있는 FBI 인증 덕에 슈프리마는 각국 공공사업 시장을 뚫을 수 있었다. 지난 5일에는 미국 상무부 산하 인구통계청과 142만달러(16억5995만원) 규모의 지문 라이브 스캐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슈프리마는 '2010년 센서스 조사'를 위해 고용된 계약직 130만며의 신원확인을 위한 '리얼스캔-10'을 미전역 신원확인센터에 공급하면서 최대 난관이라 여겼던 미국 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추가 수주가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다.
지난해 인도 전자주민등록용 지문 데이터베이스(DB) 브라질과 필리핀의 전자투표용 지문DB 이란과 콜롬비아 경찰청의 출입보안 시스템 멕시코 육군의 군사시설 신원확인용 시스템 사업을 수주했다. 2008년 매출액 224억6000만원 중 70%를 해외에서 거뒀다.
"지문인식은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해 진입장벽이 높지만 일단 장벽을 넘은 기업들은 높은 마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 사장은 또다시 새로운 장벽을 넘으려 하고 있다. 얼굴.홍채 등 다른 생체인식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 전공인 센서 퓨전 분야를 살려 지문과 얼굴을 복합적으로 인식해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오차율 1~2%인 지문인식과 15%대인 얼굴인식 기술을 합치면 오차를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SF(공상과학소설) 영화에서나 보던 세상이 머지않아 펼쳐질 것"이라는 이 사장 거의 상상 수준의 혁신을 꿈꾸고 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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