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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취임 1년] '오바마식 실용주의' 시험대 올랐다

"워싱턴에 변화 가져왔다" 50%
경제난 해결능력 '따가운 시선'
대규모 경기부양→의보개혁 '현실의 벽'

오바마 행정부 집권 1년을 맞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에 대한 미국민들의 지지도는 취임 당시에 비해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미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확산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1월 19일 실시된 매사추세츠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이 예상을 깨고 승리해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집권 1년을 결산해 보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짚어보자.

▷집권 1년 불안감 양극화 확산

오바마에 대한 평가는 표면상으로는 긍정과 부정이 반반씩 섞인 형태를 띠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오마바 행정부 1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과반수가 넘는 응답자가 테러전쟁 수행 능력과 안보 등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에 경제난 등 국내문제에서는 부정적인 응답이 많았다.

하지만 속 내용을 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 응답자가 62%나 됐다.

오바마가 선거 당시 핵심 기치로 내세웠던 변화에 대한 미국민들의 열의도 적잖이 식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가 워싱턴에 변화를 가져왔느냐는 질문에 50%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취임 당시 76%가 변화를 기대한 것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다. 무엇보다 경제난 해결능력에 대한 미국민들의 지지도가 낮은 것이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대부분 미국민들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을 불안하게 보고 있음이 여론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CNN방송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 4명 중 3명은 오바마의 경기부양책 자금의 최소 절반이 낭비됐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의 양극화도 오바마 집권 1년 후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이 지난 1월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에 대한 당별 지지도는 민주와 공화가 각각 88% 23%로 무려 65% 차이를 보였다. 이는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수준이다.

▷시험대 오른 '오바마식 실용주의'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서 당을 초월한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바마의 '실용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념을 초월해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공화와 민주간 이념논쟁은 뿌리가 깊다. 특히 양당은 정부의 역할과 재정지출 규모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규모를 축소하여 재정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이른바 '작은 정부'정책을 지지해왔다.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에 시장 논리와 민간의 자율을 중시한 정책을 펴자는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은 반대로 사회복지 등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모와 지출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큰 정부'정책을 지향해왔다.

경제적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자율에 맡기기 보다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오바마는 이런 논쟁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자고 호소했고 이런 호소는 오랜 양당 대립구도에 식상해있던 미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바마는 대선 이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큰 정부 혹은 작은 정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정부를 원한다"며 민주당의 '큰 정부'정책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외교 안보서 실리 노선 추구

오바마의 실용주의 노선은 취임 초기만해도 워싱턴 정가에 변화의 기운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먼저 드러난 변화는 인선 스타일. 오바마는 당내 계파 당을 초월한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공약에 걸맞게 파격적인 인사를 연이어 단행했다.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민주당 내 대선 경쟁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한 데 이어 공화당 소속 존 헌츠먼 유타 주지사를 중국대사로 발탁했다. 특히 힐러리의 기용은 당시만해도 예비선거 내내 치열한 레이스에서 생긴 앙금이 채 가시기 전이어서 측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이런 행보는 외교에서도 계속됐다.

이념을 철저히 배제한 실리위주의 정책을 추구했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의 인권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대학생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 전부다. 오바마의 이런 행보에는 경제난 환경오염 등 굵직한 현안들에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껄끄러운 문제를 들고나와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실리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안보도 예외가 아니다. 철군이 예상됐던 아프가니스탄에는 오히려 병력을 증파했고 대테러 정책 전반에서도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안보에서 진보성이 강한 민주당의 전통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실용주의 현실의 벽 부딪혀

오바마의 실용주의 행보가 여론의 역풍을 만난 것은 경제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공적 자금이 들어가는 경기부양책과 의료보험 개혁을 연이어 추진하면서부터다. 논란은 백악관과 민주당이 주도한 총 7천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시작됐다. 이 안은 대규모 세금감면을 비롯해 실업수당 사회복지혜택을 늘리고 교육 사회간접자본시설 등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안은 발의 당시부터 막대한 지출 규모를 문제 삼은 공화당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상하 양원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 내 역학구도와 경제난 해결이 시급하다는 여론 등에 힘입어 의회를 가까스로 통과할 수 있었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성사시킨 오바마는 곧바로 의료보험 개혁에 착수했다.

오바마는 대선 당시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이라는 야심찬 공약을 내걸었다. 어려운 경제상황과 공화당의 반대 등을 감안해 추진 시기를 늦추자는 의견이 백악관과 민주당 내 일각에서 대두됐지만 경기부양책을 성사시킨 모멘텀을 살리자는 주장에 힘이 쏠렸다. 예상대로 공화당은 거세게 반대했고 민주당은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의회는 다시 한번 뜨거운 찬반논쟁에 휩싸였다.

여기에다 보수층까지 가세해 조직적인 반대로비를 벌이면서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오바마 실용주의 정체성 논란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논란은 오바마의 실용주의 정책의 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경기부양책과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면서 '효율적인'정부를 만든다는 선거 당시 공약이 무색해진 것이다.

당장 공화당은 오바마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는 결국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의 기존 노선과 다를 것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화당은 의료보험 개혁을 통해 오바마의 실용주의 정책이 세금만 축내는 허구임이 드러났다며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화당 소속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오바마는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큰 정부를 지향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오바마의 실용주의 정책은 사실상 끝이 났다고 못을 박았다.

일부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바마의 실용주의 정책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오바마가 추구하는 실용주의는 겉으로는 중도 노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놓고 볼 때 오히려 진보성향이 강한 민주당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여론 공화에 유리…민주 위기감 확산

경기부양책과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여론은 공화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처음으로 감지된 것은 지난 19일 실시된 매사추세츠 보궐선거. 고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2009년 8월 사망)의 후임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예상을 깨고 승리, 민주당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민주당의 이 같은 반응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공화당이 내세운 후보가 주 상원의원이라는 경력 외에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는 점과 근 50년간의 민주당 집권이 끝이 났다는 점 등 표면적인 이유들 외에도 이번 선거결과가 주는 정치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당장 백악관과 민주당으로서는 의료보험 개혁에 큰 난관을 만났다.

공화당의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60석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 전까지 무소속 2석을 포함해 겨우 60석을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화당의 협조 없이 단독으로 의료보험 개혁을 밀어붙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실제로 이번에 승리한 공화당의 스캇 브라운은 의료보험 개혁 저지를 핵심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때문에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국민투표에 비유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더 큰 고민은 11월 중간선거. 이번 선거결과가 전국적인 ’반 민주‘분위기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공화당에 하원 다수당 자리를 내주는 시나리오에 대비하자는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무소속 지지층 이탈, 주요 패인

정치전문가들은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당선의 주요 원인으로 중도 성향의 무소속 유권자들의 지지를 꼽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간 오랜 분쟁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이념을 초월한 오바마의 초당적인 ’실용주의‘에 기대를 걸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오바마 집권 1년을 맞은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실용주의 정치‘에 대한 이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면서 낮은 지지율과 선거 패배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매사추세츠 선거의 경우, 등록유권자들의 절반을 무소속이 차지했으며 이들 대부분이 공화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의료보험 개혁이 무소속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소속 유권자들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규모와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작은 정부‘를 선호해왔으며 이런 성향이 오바마가 추진해온 정책과 맞지 않다는 분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 정책의 추진과정도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막대한 비용도 문제지만 추진과정에서 소수당인 공화당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선거 당시 보여줬던 초당적인 오바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설명이다.

▷경제 불안심리 확산… 민주에 불리

경제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을 떨어뜨린 또 다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오바마와 의회가 올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경제난 해소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놓고 경제난에 따른 미국민들의 불안심리가 여론조사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백악관과 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총7천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업률 등 주요 경제지표가 크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부양책 현황

민주당 주도 의회는 지난해 2월 총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다.

이는 지출 규모에서 이라크 전쟁(5993억 달러) 뉴딜정책(5000억 달러) 마셜플랜(1153억 달러) 등을 훨씬 능가한다. 경기부양책 시행 1년 동안 모두 2650억 달러의 자금이 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부양책 전체 7870억 달러의 약 1/3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출 항목을 보면 세금혜택에 가장 많은 2억8800억 달러를 지원하도록 돼 있고 연방 정부 기관과 주 정부 지원 2억7500억 달러 사회복지 2억2400억 달러 순이다. 백악관 자료에 따르면 경기부양책 시행 이후 현재(2009년 10월30일 기준)까지 총 64만329개의 일자리가 유지되거나 새로 생겨났다.

■의료보험 개혁 어떻게…

백악관과 민주당이 추진 중인 의료보험 개혁의 골자는 보험혜택대상을 확대하면서 보험료는 줄이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내 무보험자는 4천6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가운데 의료비용은 천정부지로 계속 치솟고 있다. 현 상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50년 후에는 연장자와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자금도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게 백악관관 민주당의 설명이다. 백악관과 민주당이 추진 중인 의료보험 개혁의 주요 내용과 찬반논란의 핵심 쟁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핵심 내용
▷직장의료보험 현행 유지:
현재 의료보험 가입자의 60%가 고용주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장의료보험가입자의 대부분이 현재 의료보험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보험 교환제도: 독자적으로 의료보험을 구입하는 개인이나 소규모 회사들을 위한 의료보험 교환제도를 운영한다. 가입자들은 이 제도를 통해 가격과 혜택 등을 비교해 적합한 플랜을 선택할 수 있다. 보험회사의 과당 청구나 차별을 막기 위해 정부의 규제 아래 교환이 이뤄진다.

▷공공보험: 가입자들은 의료보험 교환제도를 통해 국가가 제공하는 플랜과 민간보험이 제공하는 플랜 중 선택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가격 경쟁을 조성해 보험료를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저소득층 혜택 확대: 연방 정부가 운영하는 메디케이드와 주 정부가 운영하는 저소득층 의료혜택 프로그램의 대상을 확대한다.

▷의무 가입 원칙: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한다. 다만 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경우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부담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게 된다.

▷메디케어: 의사나 병원에 대한 지불방식을 대폭 수정 실제로 서비스가 이뤄진 경우에만 지불이 이뤄지도록 한다.

◇핵심 쟁점
▷공공보험:
논란의 최대 쟁점이다. 반대론자들은 공공보험이 도입될 경우 보험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직장보험의 경우 비용을 의식한 고용주가 혜택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공공보험에 가입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민간보험이 궁극적으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공보험에 통합될 것도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입을 보험료에 의존해야 하는 민간보험에게 국민 세금을 지원 받는 공공보험과 경쟁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공공보험을 세금이 아닌 보험료 수입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에 반해 공공보험 지지자들은 민간 보험회사들이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세금 지원방식의 공공보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용: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문제다. 하원이 부유층에 대한 할증세 신설을 제안했지만 상원과 논의를 거쳐야 한다.

▷보험배급제: 반대론자들은 국가 주도의 의료보험이 도입됨으로써 사실상 보험배급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지지자들은 민간보험에 의해 배급형태의 보험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단지 배급의 주체가 국가냐 민간회사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워싱턴 DC=최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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