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진 목사의 30일간 노숙자 체험기-1] "겨울밤 얼어죽지 않으려고 사투 벌이는 다이애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노숙자 된 DC 토박이 흑인 여성 만나
괴롭힘 피하려고 정부 쉘터 이용 안해
맥퍼슨공원의 한쪽 어두운 곳, 여기저기 나무벤치엔 커다란 짐짝 같기도 하고, 쓰레기 수거를 위해 싸놓은 검은 쓰레기 봉지 더미들 같기도 어둠 속의 형체들이 보인다. 한 걸음씩 다가서자 겹겹이 덥혀진 담요들이 꿈틀거렸다. 온 몸이 오싹했다. 노숙자들이었다.
반대편 쪽 저편으로 한 노숙자가 담요를 두르고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 다가갔다. 얼굴까지 가린 채 담요 속에서 두 눈 속의 흰자위만 말똥거리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얼굴 부분이 어둡게 보이는 것을 보아 흑인임에 틀림없었다. 얼굴과 손은 붉게 부어 마치 에스키모 사람처럼 동상에 걸린 모습이었다.
자신을 다이애나라고 밝힌 50대 후반의 노숙자 여인은 워싱턴 DC 흑인가에서 태어나 사생아 딸을 낳았다. 35세인 딸은 지금 뉴욕의 술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왜 영하의 날씨인데 정부에서 응급으로 제공하는 쉘터에서 지내지 않느냐고 말하자, “사람들도 모두 싫다”며 “혼자 지내는 것이 현재로는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폭행을 여러 번 당하고 짐 보따리까지 도둑맞은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잘 띠는 가로등 밑에서 지내면 더 안전하다”고 했다.
다이애나의 꿈은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딸과 함께 사는 매우 소박한 것. 그러나 노숙자 다이애나에겐 이것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무신론자가 된 그녀에겐 신앙도 희망도 없었다. 새해의 소망(new year resolution)을 하나만 말해보라고 하자,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해 이루어진 일도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에겐 꿈이란 미래의 소망이 아니라, 그저 불가능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이애나에게 혹시 소망하지 않았던 제목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뤄진 것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내가 매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추운 겨울에 누군가가 주고 간 담요들을 덮고 몸을 녹이고 있다는 것, 누군가가 옆에 앉아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는 것...... 그러자 다이애나는 정말 “내가 열거하지 않았던 것들이 채워지고 있다”며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나는 다이애나에게 우리가 바라고 갖고 싶어 하는 소망들보다 때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없이 직접 채워주시는 것들이 더 많이 있다며, 올 한 해는 그것들을 하나씩 발견해 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다이애나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하나님이 은혜로 거저 채워주신 것들에 대해 감사해 하며 간절히 기도를 했다. 언젠가 다이애나를 다시 만날 땐, 하나님이 그녀에게 채워주신 소망들을 나누며 공원에서 또 다른 밤을 지새울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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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을 11년째 돕고 있는 최상진 목사는 지난 20일 워싱턴 DC를 출발해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뉴욕, 매사추세츠, 커네티컷, 조지아를 거처 다음달 21일까지 노숙자 체험을 갖는다. 함께 한 두 시간만이라도 노숙자 체험을 같이 하거나 후원을 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571-259-4937(최 목사 셀폰)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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