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마법의 성
미국 와서 사는 동안에도 우리 음악을 늘 들으면서, 떠나온 조국과 사람들을 그리워 한다. 이 때 ‘우리 음악’이란 한국인이 만들었거나 한국인이 연주한 음악을 말한다.당연히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음악을 처음 들었던 무렵의 일들을 추억하기도 한다. 또 너무 좋은 음악이라고 느껴지는 음악을 들으면, 아들에게도 가끔 느낌을 묻는다. 요즘에야 음악에 관해 말이 많은 아들이지만, 전에는 무덤덤하게 대답을 하곤 했다. 나는 아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원했다.
평안한 음악을 들으면 평안을 느끼기 원했다. 그리고 간혹은, 함께 들었던 노래를 아들에게 불러보라고 권했다. 아들이 부르면 너무 너무 멋있고, 보는 이도 행복할 것 같은 노래들이 있었다. 미국 사는 한국 아이가 한국 노래를 이쁘게 부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너, 이 노래 좀 불러 봐라.”
“이게 뭔데요?”
“마법의 성이라는 곡이다. 아름답지 않니?”
아들이 더 크기 전에 어린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주기를 나는 얼마나 원했던가. 어린 아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약 이 노래를 외워서 부르면 약간의 돈을 주겠다는 제안까지도 나는 했었다. 증권분석사 일을 하는 김광진이라는 가수가 작곡하여 부른 후,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고, 유명한 킹스 싱어즈를 비롯한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과 합창단들도 연주한 이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아름다웠다. 미국에 온 후로는, 밤을 세워 공부하다가 새벽에도 들었고, 워싱턴 디씨의 빈민가에서 퇴근을 해 집으로 오는 길에도 들었다. 그 가사 하나 하나가 너무도 좋아서 항상 들으면 나에게 꿈을 생각하게 한다.
많은 리바이벌과 연주 중 ‘마법의 성’과 가장 어울리는 연주를 한 사람은 아마도 기타리스트인 안형수일 것이다. 안형수는 강원도 양구가 고향인 사람이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해 학교를 못다니고, 이발소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 기타의 선율에 매료된다.
잘리운 머릿카락을 치우고, 손님의 머리를 감기던 이 소년은 어렵게 기타를 장만하여 독학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되었던 그는 검정고시로 대학을 가는데, 대학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후, 스페인으로 건너간다. 스페인왕립음악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마드리드의 공원과 거리에서 기타를 연주하여 모은 돈으로 생활한 그는 스페인왕립음악원을 수석 졸업했다. 여기까지만이라면 나는 덜 감동했을 것이다. 그의 연주도 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안형수는 귀국 연주회를 강원도 양구군민회관에서 했다. 그가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를 못가고, ‘승리이용소’라는 간판이 걸린 이발소에서 일했던 고향,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머리를 감기다가 물을 잘못 쏟아 실수했던 이발소가 있는 고향이다.
그는 또래의 다른 친구들이 학교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발소에서 일하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고향을 그는 힘들게 기억하지는 않았을까? 그 무렵 스페인과 한국을 넘나들며 이미 인정받는 기타리스트가 된 그였지만, 서울의 큰 무대, 유명 무대를 택하지 않고 양구군민회관을 선택한 그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두고 두고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지난 주, 아들은 학교에서 탤런트 쑈에 나가 자신이 편곡한 곡을 노래했다. 친구들을 무려 열 한명이나 동원(?)해서 록 밴드와 피아노, 현악 파트를 갖추고는 신나게 노래했다. 아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잘 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친구들과의 연주를 즐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은 편안해 보였다. 낑낑 거리고 밤늦게 시간을 써서 편곡한 선율도 아름다웠다.
아들에 따르면 각 파트의 연주를 한 친구들이 학교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뮤지션들이란다. 나는 그날 밤, 아들의 음악도 좋았지만, 아들이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더 좋았다. 또 늘 까불기만 하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 함께 무대에서 연주한 친구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이제 이 아이들의 머리에는 그 날의 연주가 추억으로 남을 것이 틀림없다. 세월이 흐른 후 어른이 되어서도 같은 사진을 머리 속에 정리하겠지.
늦은 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랫만에 ‘마법의 성’을 아들과 들었다. 안형수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제는 아들에게 이 노래를 부르라고 해도 안 부를 것을 잘 아는 내 자신이 아쉽다. 아들이 더 어릴 때, 이 노래를 같이 불러서 외워 놓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그러나 자신이 꼬마였던 시절부터, 아빠가 자주 듣던 이 노래를 아들이 기억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아들에게도 ‘마법의 성’과 같은 음악이 있겠지.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